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모두 수상한 엄성영씨.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3대 디자인상은 꿈이잖아요. 이왕 시작한 거 다 타보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웃음) 저 같은 지방대생들에게 '아,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걸 전하고도 싶었고요."

학창시절 정규 디자인 교육이라곤 중·고교 미술부와 읍내 미술학원에 다닌 게 전부인 전북 부안 출신의 지방대생이 서울 명문대 디자인 학도도 이루기 힘들다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레드닷 디자인상(독일)에 이어 지난달 발표된 iF 디자인상(독일)·IDEA상(미국)을 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를 모두 수상하게 된 엄성영(25)씨다. 그는 올 2월 청주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그는 "제품을 얼마나 예쁘게 치장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불편함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 게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휘황한 3D 효과나 그래픽 자료는 없지만, 그의 콘셉트는 분명하다. "농부·장애인 등 늘 불편함을 참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으로 해결해주자"는 것. 지난해 레드닷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수상(공동수상)한 '슬링샷'은 새총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메라로, 새총 줄을 잡아당겨 진동을 주면 셔터가 터지며 깜짝 놀라는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 웃는 모습 같은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iF 산업디자인 부문 수상작 '에코 글라스하우스'는 솔라패널(태양광판)을 달고 원적외선 발열등을 설치해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였고, 와이퍼를 설치해 그린하우스 위에 쌓인 눈덩이를 쉽게 제거할 수 있게 했다. IDEA 콘셉트 디자인 본상을 받은 장애인 휠체어 'Z 클라임'은 보도 턱을 오르지 못해 차도로 위험천만하게 다니는 장애인이 팔걸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수동으로 턱을 넘을 수 있게 한 콘셉트다.

2012 IDEA상을 받은 장애인 휠체어‘Z 클라임’(왼쪽). 휠체어의 팔걸이 부분을 자유롭게 움직여 낮은 턱을 오를 수 있게 했다. 2011 레드닷에서 수상한 카메라 '슬링샷'(오른쪽)은 새총줄을 잡아당겼다 놓으면 셔터가 작동한다.

부안에서 나고 자라 대학 입학 전까지 서울에도 와본 적 없다는 그는 "농민들의 사소한 생활 속 불편함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농촌에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불편함이 너무도 많은데 이를 디자인으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별로 없어요. 비닐하우스 위에 눈이 쌓여 무너지는 것, 키 작은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노인들이 허리를 숙여 수 시간 일해야 하는 일들…. 휴대전화 모서리 디자인 하나에 수천 명의 디자이너들이 매달리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죠."

엄씨는 군청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과 반대로 어릴 적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비싼 돈 들여 화가가 되려고 그러느냐'는 반대에 부딪혀 미술학원도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돈 없으면 대학 가서 갚아라"는 학원 원장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외상'으로 학원에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선 국내 디자인 공모전에서 20여 차례 수상했다.

"제품 기획부터 제작까지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서울에서 자취하며 취업을 준비 중이다. "시골 출신, 지방대생이라는 것 때문에 한땐 위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도시 친구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경험들, 추억들이 제 자산이 된 것 같아요. 이게 산업적으로 말하면 '블루오션' 아닙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