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전후해서 일련의 정치행사들이 개최되었다. 이 정치행사들은 김정은이 '후계자'의 딱지를 떼고 당·정·군의 명목상 1인자로 등장하는 자리였고, 계획된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다. 또한 북한은 예고한 대로 '광명성 3호'를 발사하는 것도 실행에 옮겼다. '4월 정치행사'는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열병식 대중연설과 야간 불꽃놀이로 막을 내렸다.

북한에게 2012년은 김일성 100회 생일과 김정일 70회 생일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그래서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원년(元年)'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안으로는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미사일과 핵개발에 진력했고, 밖으로는 한국·미국과의 '성전(聖戰)'을 준비하면서 고립을 자초했다. 그 결과 북한 스스로 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은 완성되었지만 경제강국은 미완성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강국은 주민들의 먹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북한은 늘 경제강국을 뒷전으로 제쳐두고 사상·군사강국에 몰두해 왔다. 북한 지도부의 이런 인식 때문에 김일성 시대의 '쌀밥 타령'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구소련의 해체는 핵과 미사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핵과 미사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먹는 문제의 해결이 중차대하다는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준다.

북한의 먹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은 식량난 세대를 양산하고 탈북을 부추겼다. 식량난 세대로 인해 입대 예정자의 신장은 점점 작아져서 이제는 142cm 이상이면 입대해야 한다. 그리고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 1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는 지금 북한 주민에게 한 톨의 식량이 가장 절실한 문제라는 뜻이다.

'4월 정치행사' 동안 135초의 불꽃놀이를 위한 미사일 발사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우상화 상징물 제작, 태양절 축하를 위해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기간 동안 투입된 엄청난 달러는 민생과 무관한 낭비적 소비였다. 낭비적 소비는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김정은의 전면 등장 이후 먹는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소식도 들린다. 그는 4·15 태양절 열병식장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고 말했고, '자본주의 도입 의지'도 밝혔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또한 "금년에는 1만 명의 해외인력을 송출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런 지시들은 모두 부족한 달러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부족한 달러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달한 달러를 생산적 투자에 사용하여 주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한강의 기적'의 종잣돈이 광부와 간호사의 서독 송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김정은은 '군사강국'이냐 '경제강국'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자본주의 도입과 인력 송출로 벌어들인 달러는 군사강국을 위한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경제강국을 위한 건설적 투자에 사용돼야 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강성대국의 근원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