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보존연합·이사장 안금남 목사)은 8일 지리산 왕시루봉 야외 예배당에서 교계 지도자와 평신도·대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교유적지 50주년 기념예배'를 열었다. '보존연합'은 광주·전남 지역 개신교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지역에 남아 있는 개신교 선교유적지를 보존하고 근대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학술 활동을 해온 단체다. 이날 예배에는 예장합동 총회장 이기창 목사, 예장 고신 부총회장 박정원 목사, 광주광역시 교단장협의회장 이원재 목사, 보존연합 공동이사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박성민 목사 등이 참석했다.
1910~20년대는 초기 한국 개신교 선교의 일대 위기였다. 말라리아, 이질 등 풍토병이 문제였다. 선교사 67명이 목숨을 잃고, 한국 태생 선교사 자녀 10명 가운데 8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한 것. 풍토병이 가장 심한 여름철 잠시 피신할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선교사들은 1921년부터 지리산 노고단에 수양관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휴식뿐이 아니다. 예레미야서를 뺀 구약 전체가 쉬운 한국말로 번역된 곳도,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기 위해 한글 문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곳도 지리산 수양관 단지였다. 한글 문법책 작업을 주도한 남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레이놀즈(1867~1951)가 '선교하려면 한국말부터 제대로 하라'며 선교사들을 혹독하게 가르치고 시험까지 치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싼 대립으로 1940년대 초 일제가 이 땅을 강탈했고, 광복 뒤 '적산 처리'됐다가 6·25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파괴됐다. 현재는 예배당 유적만 남은 상태다.
1962년부터는 후배 선교사들이 노고단 수양관 단지의 연장으로 왕시루봉 일대에 수양관을 지었고, 현재 12채가 남아 있다. 한남대 설립자인 인돈·인휴 선교사 부자(父子), 여수 애양원 원장을 지낸 한센 환자들의 아버지 도성래 선교사, 마산 결핵병원 설립자 배도선(영국) 선교사 등의 흔적이 이곳에 남아있다. 지금까지 수양관 단지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데는 특히 외증조부 유진 벨(1895~1925) 선교사부터 조부와 부친까지 선교사 집안의 후손인 인요한(53)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센터장의 역할이 컸다. 인 박사는 "어릴 때 여름에 이곳에 올라오면 아버지는 뒷방에서 하루종일 후원금 요청 편지를 타자로 치시고, 우리 형제들은 교리서를 달달 외웠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보존연합 오정희 상임이사는 "올 8월에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재 등록을 신청하기 위해 모든 서류 준비를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