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식 동국대 법학과 교수

교과부가 제출한 '2011년 학교 자살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자살 학생은 150명으로, 이 중 학교 폭력에 의한 자살은 2명(1.3%)뿐으로 조사됐다. 원인 불명의 자살 학생이 38명에 달하는 데다 일선 교육청의 보고 누락까지 감안하면 학교 폭력에 따른 자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또 모든 범죄와 비행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학교 폭력은 주관적이다. 피해 학생이 느끼는 감정과 주변 사람이 보는 상황 사이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교 폭력은 신고도 잘 안 하니 학교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학교 폭력의 수치란 어차피 실제로 발생한 건수가 아니라 인지한 건수일 수밖에 없다. 학교 폭력의 원조라고 할 일본도 몇 년 전부터 조사 방법을 발생 건수에서 인지 건수로 바꾸었다. 그리고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학교 전체의 수치가 아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안목과 배려가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이 숫자에 묻혀서는 안 된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생명과 신체이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을 대할 때에도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책이 필요하다. 피해 학생에게는 학교 폭력의 공포가 한순간에 해소되지 않으며, 학교는 여전히 도피할 수 없는 우리이다. 그저 치료비를 지급해준다고 해서 상처가 쉽게 치유될 리가 없다. 피해 학생 보호는 학교 행정이 아니라 인간적인 배려이다. 깊숙이 파고든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가해 학생과 보호자도 피해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가해 학생을 처벌하고 징계하는 것이 대책의 중심은 아니다. 처벌과 징계는 책임을 묻는 방법의 하나에 불과하고, 경찰과 검찰 등 형사사법기관이 할 일이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은 가해 학생을 책임 있는 시민으로 육성하는 일이다. 학교 폭력을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그 자체로 작은 사회이다. 학교는 시민으로서 권리와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체득시켜 사회로 내보내는 장소이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다툼이 아니다. 가해 학생을 처벌하고 피해 학생을 치료한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핵심은 학교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일, 즉 공공성 함양에 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의 학교에서 학교 폭력 대책으로 시민성(citizenship)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해 학생 선도와 피해 학생 보호, 양자의 분쟁 조정을 위해 학교에 설치한 자치위원회 역할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원 다수가 학부모인 데다 전문성이 없어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학교와 교사에게 그 역할을 넘기기도 어렵다. 지도 권한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권(敎權) 강화에 필요 이상의 거부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피해 학생의 인권 보호는 물론 전체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학교와 교사의 지도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 폭력을 완전히 근절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학교 폭력을 억제할 수는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문제의 선진국으로 일본과 노르웨이를 꼽는다. 이 나라들이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범국가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문제의 선진국이라는 평가는 온 국민이 학교 폭력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도 학교 폭력 문제의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