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이‘몸’이라면 폭포는‘심장’이다.” 사진은‘백두산 장백폭포와 호랑이’(2011) 앞에 선 사석원.

화가 사석원(52)은 본인 말대로라면 '거의 누워 있는 사람'이다. 워낙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서서 그림 그릴 때를 빼곤 삶의 태반을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보낸다. 서울 우면산 앞 방배동에 20여년 살고 있지만, 약수터에 올라가 본 게 딱 네 번, 게다가 방향치에 기계치다. 차라리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해외여행을 갈지언정 서울 아닌 곳으로는 좀처럼 차를 몰고 나가지 않는다.

몸 쓰는 일, 그중에서도 '등산'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그에게 지난 2010년은 특별했다. 서귀포 돈네코 원앙폭포, 설악산 천불동 계곡 오련폭포, 소백산 희방폭포, 덕유산 칠연폭포…. 전국 산이란 산은 이 잡듯 뒤지고 다니며 폭포 100여 군데를 답사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에게 폭포는 익숙한 주제. 하지만 막상 폭포를 중점적으로 그리게 된 것은 당시 쉰 고개를 막 넘던 나이 탓이 컸다. 사석원은 "쉰이 넘어가면서 뭘 봐도 설레지 않게 됐다. '환희의 찬가'를 부를 만한 요소를 찾다가 6~7년 전 금강산 구룡폭포를 처음 보고 물빛과 바위의 아름다움에서 느꼈던 설렘을 떠올렸다"고 했다. 폭포 앞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의 풍류가 평소 '풍류객', 혹은 '한량'을 자처하던 그에게 자기 자신을 잊고 자유롭고 활기찬 상태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었다는 것.

사석원의 '설악산 비선대'(2011·부분 확대).

11일~내달 3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山中美人-Secret Paradise'는 사석원에게 '기록할 만큼 예외적인 해'였던 2010년의 기록이다. 전시작 40여 점은 굽이치고, 휘어지며, 떨어지고, 부서지면서 방울 방울을 튀겨내는 허연 물줄기의 향연이다.

진달래·개나리 등 봄꽃이 분홍·노랑·연두의 향연을 펼치는 설악산 비선대와 금강산 구룡폭포의 봄 풍경처럼 경치에 치중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그림은 시원하고 호방한 폭포 옆에 호랑이·부엉이·닭·황소 등의 동물을 그려넣었다. 실경(實景)인 폭포 그림과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의외의 동물이 만나 이루어내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이번 전시의 묘미인 셈.

사석원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산속에서 미인(美人)을 만나는 상상을 많이 했다. 의외의 존재인 미인과 마주치면 설레고 두근거리지 않겠나. 그림 속 동물은 결국 '미인'의 상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전통 동양화에서는 폭포를 표현할 때 주변 바위만 칠하고 물줄기 자리를 비워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서양화 재료를 쓰고 있는 사석원은 물감을 튜브째로 발라 육질(肉質)과도 같은 두툼함과 속도감을 표현했다. 그는 "40mL 튜브 하나에 6만원쯤 하는 외제 물감을 쓰는데, 동물 얼굴에 '찍' 내쏘면 튜브 하나쯤은 금세 사라진다. 물감값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처지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웃었다.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