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존망 위기에 처했으니, 이 한 몸 죽음으로 임금의 은혜를 갚으리라(當存亡之秋 一死報君恩).'

임진왜란 발발 420년을 맞아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의 전투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친필 글씨(가로 42㎝, 세로 97㎝·사진)가 공개됐다. 소장가 석한남(54)씨가 1일 공개한 이 글씨는 족자 형태 영인본으로 '한산 요새에서 여해(閑山寨中 汝諧)'라고 썼다. 여해(汝諧)는 이순신 장군의 자(字)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한산도에서 왜군과 싸우기 전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겠다는 무인의 기개를 담아 쓴 글씨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존망지추(存亡之秋)'는 제갈량이 유비의 유언을 받들어 위나라를 정벌하기 전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나오는 구절"이라며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7월 한산섬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장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대군을 맞아 적선 47척을 불태우고 12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산대첩이다.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은 "족자 형태로 보아 일제강점기 또는 광복 직후 원본을 촬영해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순신 장군이 쓴 글씨 가운데 이런 내용을 담은 친필이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원본 못지않게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라고 했다. 영인(影印)은 사진술 발명 뒤 주요 문서와 서화 등을 복사·보존하는 방법으로 애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