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사퇴한 김정배(72)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1998~2002년 고려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안암캠퍼스를 리모델링하고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대학개혁을 추진했다. 2009년엔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2014년 4월까지가 임기였다.
김 이사장이 임기 만료를 2년 앞두고 조기 사퇴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고려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해 발생한 '투자 손실' 사건이다. 지난해 고려대 일부 인사들이 사이버 대학원을 만들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받으러 교육과학기술부에 찾아갔다가, 교과부 관계자로부터 "고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사이버 대학원을 세울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에 교수들이 학교의 재정상태에 의문을 갖고 사실 확인에 나서, 재단이 거액의 투자 손실을 본 것을 확인했다. 투자 손실금에는 모 단과대학이 새 강의동을 짓기 위해 동문과 기업에 모금한 돈 100억원 이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해 10월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등 재단의 주요 이사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사장이 이사회 심의와 의결 없이 재단 적립금을 위험성이 높은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해 250억~500억의 손실을 봤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월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해 이런 내용을 학내에 폭로했다. 이어 고려대 교수의회가 ①김 이사장이 책임지고 사퇴하고 ②재단과 대학본부는 자산과 기부금을 어떻게 운용해왔는지 공신력있는 외부 전문가에게 감사를 받고 그 결과를 공개하며 ③고려대 의료원 수익금 내역과 용도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김 이사장이 조기 사퇴한 또 다른 원인은 김 이사장과 김병철 총장의 알력 때문이라고 고려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김병철 총장은 재단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후손으로 이사회 주요 멤버인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의 아저씨뻘이다.
김 이사장은 작년 초 총장 선출 당시 김병철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취임한 뒤에는 각종 현안을 처리할 때마다 두 사람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사립대학이 재단 적립금을 외부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뒤, 이사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그동안 학내 인사들과 만나 "재단은 2000년대 중반부터 외부 금융상품에 투자해왔다. 도의적 책임이야 있다지만, 이번 투자 손실은 반드시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데 재단과 학교본부가 나만 몰아세우니 억울하다"는 심정을 토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사퇴 후 자신을 둘러싼 각종 설(說)에 대해 해명하고 법적 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30일 재단 사무실을 떠나기 앞서 교수의회 의장단과 면담하고, ELS 투자 경위를 밝힌 문건과 재단·학교본부가 매점 등 각종 학내 수익사업을 수의계약을 통해 배분해왔다는 주장을 담은 문건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의회는 이 문건을 정밀하게 검토한 뒤, 잘못된 부분이 드러나면 재단과 학교본부에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LS(주가연계증권)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원금이 보장되지만, 주가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 폭락하면 그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