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이보미(가명·11)양은 악몽 같은 한 해를 보냈다. 말 잘하고 세력 있는 동급생 민지(가명·11)가 굼뜨고 어눌한 재희(가명·11)를 괴롭히는 것을 말리다가 되레 민지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이다.

민지가 그네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을 때 담임교사가 주위에 있던 재희에게 "민지 일상생활을 도와주라"고 한 게 발단이었다. 민지는 점차 재희를 종처럼 부렸다. 재희가 식사 중인데도 "내 식판부터 치우라"고 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발밑에 연필을 떨어뜨린 뒤 "당장 주워라"고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보미가 "그만 하라"고 하자 이튿날부터 재희 대신 보미를 괴롭혔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 교실에도 어른들 세상 뺨치는 '파워 게임'이 있다. 공격적인 아이들은 새 학년이 되면 한 달 정도 서로를 툭툭 건드리다가 움찔하며 주눅이 드는 아이를 골라 4월부터 본격적으로 따돌린다. 말리는 아이가 먼저 타깃이 된다. 그 아이를 제압해야 반 전체에 '쟤처럼 나서면 너희도 당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작년 12월~올 1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2 학생 91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학교 폭력을 목격해도 그냥 방관한다(56.0%)"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무력감이었다. 학생들은 "나도 같이 피해를 당할까 봐"(34.0%) 혹은 "개입해도 소용이 없어"(16.0%) 모른 척했다고 했다. 하지만 폭력을 못 본 체하면 아이들 마음에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폭력을 방관한 아이들은 ①왜 똑 부러지게 막지 못했는지 답답하고(31.0%) ②무섭고(27.0%) ③화가 나고(20.0%) ④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22.0%)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