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이 성폭행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조선족 남성이 자신을 고소한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애초 문제가 됐던 성폭행 사건 수사기록에 가해 남성이 보복 범행을 암시하며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여러 통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법원이 수사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영장 기각 결론을 내려, 결과적으로 참혹한 보복 범죄를 부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지난달 21일 금천구 가산동의 한 빌라에서 한때 동거했던 강모(여·42)씨를 감금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조선족 이모(43)씨에 대해 이달 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영장담당 박모 판사는 다음날인 3일 "이씨의 주거(住居)가 일정하고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달 21일 새벽 2시 20분 강씨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져간 흉기로 강씨를 32차례 찔러 살해했다.

그런데 지난 3일 법원이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할 때 경찰이 제출한 수사기록에는 이씨가 '죽여버리겠다' '언제든 만나기만 해봐라.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강씨에게 여러 통 보냈다는 사실과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첨부돼 있었던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 문자메시지는 강씨가 이씨를 고소하면서 경찰에 제출한 휴대폰에서 나온 것이다.

경찰 관계자들은 "문자메시지들은 보복 범행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씨를 반드시 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수사기록에 첨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기록에는 강씨가 이씨에게 성폭행을 당할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진술도 들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감금됐다가 맨발로 도망을 쳤는데, 이씨에게 결국 붙잡혀서 끌려 들어갔다"고 수사 당시 진술했다.

이씨도 강씨 말이 맞다는 내용으로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강씨는 이씨 집에 감금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4일 이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빠져나왔다.

강씨와 이씨는 작년 9월쯤부터 약 5개월간 동거했었다. 그러나 갈등이 심해져 강씨가 헤어지자고 요구했고 실제 2월부터는 따로 살고 있었다고 경찰은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에서 "감금하고 성폭행한 게 아니라 강씨와 합의하에 관계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서울남부지법 박 판사는 그러나 "경찰이 수사기록에 첨부한 휴대폰 문자메시지들을 봤지만, 그런(죽여버리겠다) 식의 협박문자는 본 적이 없다"며 "경찰이 그렇게 얘기했다(죽여버리겠다는 문자메시지가 있다)는 언론보도는 다 소설"이라고 말했다. 박 판사는 "강씨가 (감금된 뒤) 한 차례 도망을 치다가 붙잡혀 끌려왔다는 내용을 수사기록에서 보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내용은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피해자 강씨의 고모(59)는 "조카가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해서 범인을 잡았는데, 판사가 풀어줬다니…한국에 와서 산다면 한국이 우리 조카를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강씨의 다른 친척 권모(60)씨는 "강씨의 아버지가 중국에서 입국하는 대로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외에도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피의자가 풀려나자마자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최근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작년 3월에는 전과 9범 이모(36)씨가 영장기각 11일 만에 흉기로 사람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아 달아나려다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애초 경찰은 이씨가 가중처벌을 받는 형법상 누범(累犯) 규정에 해당해 도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기각했다.

같은 달 경기도 수원에서는 고시원에서 여주인과 말다툼을 하다가 고시원에 불을 지른 문모(52)씨가 9일 만에 다시 찾아가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 경찰은 문씨가 전과 3범이어서 재범 우려가 높다고 보고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고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