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쓰는 시라는 거 거짐 내 얘기 받아 적은 거라고, 먼젓번에 왔던 글 쓴다는 네 선배가 그러드라. 너 그러니께 이 어미한티 잘혀. 글삯 받으면 어미한티도 한몫 떼주고 말이여."(17쪽 '시인의 서랍')
이 한 줄의 고백에 시인의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능청과 해학으로는 충청도가 비좁다는 시인 이정록(48).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큰 상도 두 개나 받고 '정말' 등 벌써 6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이지만, "몸을 쓰지, 왜 시를 쓰나"(시인 신경림)라는 문단 남성들의 질투를 받는 '문단 육체파'. 이 각진 로마 병정 같은 사내보다 그 모친이 더 궁금했다. 등단 23년 만에 처음으로 펴낸 산문집 '시인의 서랍'(한겨레출판)을 핑계 삼아 시인의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달렸다. 운전대를 잡은 시인은 "내가 무슨 채록자여? 아티스트는 나지, 엄니가 아니여"라고 연방 툴툴대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꽃무늬 '몸뻬' 차림으로 집 앞에 나와 있던 시인의 어머니 이의순(72) 여사가 반갑게 객을 맞는다. 반세기 전에 이 집으로 들어와 시인 포함, 3남 2녀 자식농사를 지었고, 지금은 텃밭에서 고추 고구마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앞마당에 붙들어 맨 진돗개 백구와 경운기 옆에 활짝 핀 진달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자식들 운동회를 제외하면 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 없다는 시인의 모친. 어머니가 쓴 편지에는 그래서 거의 받침이 없다고 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괴뢰군이 보낸 암호문'이라 농을 했고, 위트와 유머가 삶의 좌우명인 아들은 이를 '한글받침 무용론'이라 불렀다. '청년 이정록'이 군대 갔을 때 어머니가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사라하느 내 아더라." 시인이 된 아들은 이를 "정말 아름다운 상형문자"라고 정의했다.
모자(母子)가 함께 쓰는 연작시 '어머니학교'가 있다. 정확히는 어머니 일상과 말씀에 영감을 받은 시인이 '어머니학교'라는 제목으로 빚어내고 있는 시편들이다. 올 하반기에 책으로 묶일 이 연작의 1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큰애 너두 곧 쉰이다. 눈 밑에/ 검은 둔덕이 쪽밤 만허게 솟았구나./ 눈물 가두려구, 눈알이 둑을 쌓은겨./ 아버지는 그 눈물 둑이 얕았어야./ 속울음으로 억장 울화산만 키우다/ 일찍 숨보가 터져버린 겨./ 슬플 땐, 눈물 둑이 무너져라/ 넋 놓구 울어라. 본디 남자란 게 징인데/ 좀 징징거린다구 뉘 뭐라 하겄냐?'
사실 산문은 시인의 뜨겁고 슬픈 맨살을 드러내는 일. 밤이 깊어 소주잔과 함께 그가 조금씩 털어놓은 가족사를 듣는 시간은, 때로는 기자가 글로 쓰지 말아야 할 내용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동화와 동시 창작에도 바쁘다. 동화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가 그의 작품. 그는 "동화와 동시는 자기에 대한 위무(慰撫)여. 쓰는 사람을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게 만들어주지.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자신을 치유하니까 쓰는 거여"라고, 잠시 지나가듯 말했다. 그리고는 금방 특유의 능청과 해학의 재담으로 되돌아왔다.
시인의 본분은 맨살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자양분 삼아 성찰의 시편과 문장을 빚어내는 것. 이번 산문집 역시 시인 이정록이 그 소명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때로는 포복절도할 웃음으로, 때로는 서늘한 깨달음으로. 그가 군대 훈련병 시절 취사장 사역을 나갔다가 매일 200자 원고지 5장에 파리 1000마리를 잡아 붙여야 했다는 에피소드에 배를 잡고 웃었고, 파리처럼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는 글쟁이가 되겠다는 다짐에 다시 한 번 그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소주잔에 그의 너털웃음이 한 움큼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