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회 산업부장

유통업계가 중대 기로(岐路)에 서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은 정치권·정부·지방자치단체의 골목 상권 살리기가 본격 시행되면서 '서민 경제 파탄의 주범(主犯)'이 돼버렸다. 정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의 강제휴일과 영업시간 제한 규제의 근거를 마련했고 지자체들은 규제조치를 속속 시행 중이다. 업계도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17일 "유통산업발전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반발 강도가 낮지 않다.

'마트 문 닫아 골목 상권 살리자'와 '너무나 억울한 처사다'라는 극단의 두 목소리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정작 불안하고 불편하고 피해 보는 이들은 애꿎은 소비자들이다. 서울의 SSM 규제가 있었던 지난 8일 "갑자기 어디서 먹거리를 구하나" "장 보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스러운 반응이 주류였다. 지자체가 대형마트를 강제 휴점시켰다고 해서 유통업체가 순순히 항복할 것 같지도 않다. 마트들은 온라인 마케팅 등으로 방향을 틀어 월 2회 휴점으로 인한 매출 손실을 만회하면 된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정부의 마트 규제조치가 중단될 것 같지도 않다.

참 어정쩡한 상황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지자체는 규제하고, 마트는 우회 방법으로 매출과 이익 규모를 유지하는 현 상황은 '골목 상권 살리기'라는 본래 목적도 못 이루고, 소비자 피해만 커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유일한 해법은 대형마트들이 골목 상권, 소비자, 자신이 함께 사는 공생(共生) 해법을 제시하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본질로 돌아가 보자. 대형마트 규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도심 곳곳으로, 재래시장 주변으로 거세게 진출하는 과정에서 기존 상권과 충돌한 데서 비롯됐다. 이마트가 1993년 창동점을 연 이후 3개 대형마트의 지점 숫자는 무려 365개에 달한다. SSM도 롯데슈퍼, GS수퍼마켓,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4개 회사 매장만 1000곳이 넘는다.

유통업계의 결자해지(結者解之) 답안에는 세 가지가 꼭 포함돼야 한다. 우선 대형 유통업체 스스로 무분별한 시장 진출을 자제해야 한다. 그동안 경쟁적인 진출로 유통 선진화의 밑바탕을 일구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역 경제와 골목 경제를 뒤흔든 것은 분명하다. 꼭 진출하려면 지자체나 지역 상권과 상생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유통업체 스스로 중소기업의 판로이자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유도하는 1등 공로자라는 자산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마트에서 상품을 파는 기업은 2500개가 넘는다. 그중 중소기업은 1700~1800여개로 70%에 달한다. 롯데마트 납품업체 2600여개 중 중소기업은 2000개 이상이다. 홈플러스도 비슷하다. 대형마트들도 중소기업을 키우고 육성하는 기여자인 셈인데, 국민들 귀에는 생소하게 들리는 억울함을 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물가 낮추기 노력을 펼치고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과도한 수수료 등 욕심도 줄여 나가야 한다. 반값 TV 등 '가격 낮추기 경쟁'이 대형마트에서 비롯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작다고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크다고 늘 나쁜 것도 아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소기업을 키우고, 지역 상권과 상생하며 궁극적으로 '질 좋고 값싼 제품'을 소비자에게 안겨줄 때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이번 사태는 유통산업 성장통(痛)의 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