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이 승리하지 못하면 나라에 큰일이 날 것처럼 유권자들을 겁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정당들로부터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 과거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이번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말 한마디 없이 과거만 붙들고 늘어졌던 선거는 없었던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찰 의혹과 음담패설 같은 잡소리로 시종(始終)한 선거였다. 안보·복지·국가재정·청년실업·비정규직 보호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나온 적이 없다.

정치가 국민을 새롭게 하고, 새로워진 국민이 정치를 다시 한 차원(次元) 높이는 게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가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정치가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바보 취급당한 국민이 정치를 단단히 혼내기는커녕 그 정치의 수준에 끌려다니고 말았다. 정치와 국민이 저질화(低質化)를 향해 동시에 추락하는 이 한국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치가 먼저 달라지거나, 국민이 먼저 달라지거나 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선거판을 통해 정치가 스스로 달라질지에 대한 희망을 상당 부분 접었다. 그렇다면 국민이 달라지지 않으면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지 못하면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던지고, 해머·전기톱을 휘둘러도 국민은 그걸 탓할 자격이 없다. 저질 의원들이 제발로 국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그런 그들을 뽑은 것이다.

제조업체들이 좋은 상품을 시장에 내보내려 애쓰고, 불량 상품이 발견되면 부리나케 리콜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이 국민에게 나라를 이끌고 가려 하는 아무 방향도 제시하지 않고, 불량 저질 후보들을 공천하고, 그러고도 표를 주지 않으면 나라가 잘못된다고 협박까지 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권자를 우습게 안다는 뜻이다.

우리 정당이 아직 이런 수준이라면 국민도 대의정치 정신에 맞춰 선거 때 먼저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다. 국민은 자신의 한 표로 의회 민주주의와 상용(相容) 불가능한 이물질(異物質) 같은 후보, 국민을 진흙탕으로 끌고 가는 오염원(汚染源) 같은 후보, 자라나는 청소년까지 타락시키는 패륜적(悖倫的) 후보만은 걸러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의 투표 참여가 권리이면서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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