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 입구 모습.

경찰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과 거짓말이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인사건의 비극을 키운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12신고센터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내가 이렇게 당했을 때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겠나"라는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A(28)씨의 유가족들은 "112 신고 녹취록을 들어보면 경찰은 마치 남의 일처럼 대응하는데, 만약 경찰이 자신의 친동생이 성폭행당한다고 신고를 했어도 그랬을까 의문이 든다"며 "이런 식이라면 누가 112에 신고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의 시스템은 확연히 달랐다. 가장 위험한 순간 국민들의 마지막 '생명선'인 112와 911시스템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먼저 전문성의 차이가 컸다. 수원 사건에서 피해자 A씨의 전화를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은 112신고센터 장모 경사다. 경찰에 따르면 12년 경력의 장 경사는 2달 전 112신고센터에 발령받았지만, 그는 경찰교육원에서 2주간 받도록 돼있는 신고접수 요원 기본교육조차 받지 않았다. 경찰은 112신고센터에 경찰을 우선 배치시킨 뒤 교육은 사후에 받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장 경사는 "성폭행당하고 있어요"라고 시작된 A씨의 절규에 가까운 신고를 받은 뒤 "선생님 핸드폰으로 위치 조회를 한 번 해볼게요"라고 말한 뒤 마치 다른 사람이 응대하는 것처럼 "저기요 성폭행당하고 계시다고요?"라고 재차 물어보는 답답함을 보였다. 다섯 번을 대화한 뒤 그후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선 911신고센터 상담요원을 고용할 때 일정기간 동안 교육을 받거나, 자격증을 따야 한다. 상담요원 프로그램은 현장 경험이 많은 경찰을 대상으로 시험에 통과한 응시자만이 참여할 수 있으며, 대부분 1년 단위로 진행된다.

최종 시험을 앞두고는 워크숍을 진행해 요원들을 현장에 투입, 현장 감각을 시험하기도 한다. 이때 베테랑 요원은 프로그램 참여자가 신고전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평가한다. 이런 교육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 6~8개월 동안 계속된다.

우리는 전국에 배치된 112신고센터 요원 1395명 중 경찰교육원에서 매년 교육받은 숫자는 280명에 불과하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는 "112신고센터에는 수백건의 신고에 대해 긴급 여부 등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의 차이가 있다 보니 판단하는 역할도 차이가 크다.

미국의 911신고센터 상담요원은 사고나 범죄 상황을 발 빠르게 파악해 사태의 피해자가 신고하는 목소리나 표현의 다급한 정도를 갖고 그 심각성부터 판단한다. 이어 출동시킬 경찰·소방관·응급 구조대원 수를 결정하는 일도 911 요원들이 한다. 만일 사고로 다친 사람의 신고라면 사고 현장에 구조대원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응급처치 요령을 설명한다.

특히 미국·영국 등은 신고를 받으면 신고자의 목소리로 위험도를 평가하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목소리를 들은 상담요원이 위험성을 판단해 등급별로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1일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인' 피해자 A씨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부부싸움인 것 같다"고 얘기한 우리 경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리 112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점 중 대표적인 것은 112신고센터 내부의 복잡한 시스템이다.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거든요."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정확한 피해자 A씨의 신고 내용은 112 신고접수대장에서 "지동초등학교.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로 둔갑했다.

결국 현장출동 경찰에 날아간 지령에는 '집안'이란 표현이 빠졌다. 그 바람에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상황에서 경찰들은 '집'은 안 찾고 동네 공원, 학교 운동장 등에서 탐문 활동을 벌였다. 박현호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상담요원이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현장 상황을 분석해 출동인원 등 대응 수위를 결정한다"며 "사건 발생 시 1차 현장을 묘사해야 하는 상담요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911로 전화를 걸 경우 자동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신고자가 전화를 통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납치) 등에서도 경찰력의 파견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7일 열린 '전국경찰 화상회의'에서 "112 신고센터와 경찰서 상황실 운영체계를 전면 바꿔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