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혁의 이야기는 1990년대 초반 서울 종로 허름한 당구장에 딸린 골방에서 시작된다. 친구들과 노름을 즐기던 당구장 주인은 화장실에 가면서 노름판을 구경하던 한 중학생에게 패를 맡겼다. 우연히 끼어든 아이는 순식간에 판을 휩쓸었다. 그러고는 도박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같은 말을 들을 틈도 없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집중력이 뛰어났고, 상대의 패를 잘 읽었다. 돈을 잃은 어른들은 더 이상 그를 아이 취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타짜'들까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어른들이 걸었던 '나쁜 길'을 가지는 않았다. 그는 해외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브리튼 토너먼트'(2003년), 'RCT 토너먼트'(2004년) 등 유럽의 크고 작은 포커대회를 휩쓸었다.

다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전직 프로 갬블러(도박사)'란 이력을 달고 TV에 출연하고 있다. 어른들 틈에 끼어 내기 당구와 화투판을 전전했던 소년은 요즘 SBS '스타킹', TV조선 '매직홀' 등에서 카드를 이용한 심리게임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출연자 10명에게 카드를 나눠주고 누가 에이스를 들고 있는지 알아맞힌다. 마술이나 눈속임이 아니다. 상대방의 눈동자나 입 주변 근육의 떨림, 서 있는 자세를 관찰해 패를 읽는 그만의 심리 분석법이다. 이는 도박판에서 상대방의 '블러핑(패를 읽히지 않으려는 것)'을 간파하려고 그가 익힌 '생계형 기술'이다. 최근에는 연예인들과 함께 예능프로그램 '노코멘트'에도 출연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그는 '사람의 심리를 읽는 기술', '주식 투자는 두뇌 게임이다' 같은 책도 썼다. 그 안에는 소위 '큰 판'에서의 경험과 카지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담겼다. "주식은 도박"이라고 서슴없이 주장하는 그에게 증권 채널들도 관심을 가졌다. 요즘 그는 월~금요일 밤 SBS CNBC에서 '이태혁과 최고 승부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주식 전문가 3명과 함께 '잡주(雜株)는 없다'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고 있다. 매주 최소 5만명이 이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있다.

서울 힐튼호텔의 세븐럭 카 지노에서 모의로 진행된 바카 라 게임이 끝나자 이태혁은 미련 없이 카드를 던졌다. 청 년 시절을 프로 갬블러로 보 낸 그는 이제 도박의 세계를 떠났다. 대신 수많은 게임 경 험을 바탕으로 심리분석과 주식투자에 대한 책을 쓰고, 증권방송 MC 및 TV 예능프 로그램 출연자로 변신했다.

―전직 갬블러라면서 증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도박과 주식이 어떻게 연결되나.

"내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남의 돈을 먹는 행위는 모두 도박이다. 나는 주식이 포커나 바카라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개미 투자자 입장에선 상대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주식이 도박보다 더 언페어(unfair)한 게임이다."

―게임엔 누군가 상대가 있어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머니게임의 상대는 누구인가.

"포커에서 52장의 카드로 조합할 수 있는 패가 252만 가지가 넘는다. 그것을 다 알아도 상대가 들고 있는 카드를 모르면 질 수밖에 없다. 내 카드보다는 상대방의 카드가 더 중요하다. 주식 역시 내가 산 주식보다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집단이 가진 주식이 더 중요하다. 개미 투자자 입장에선 특정 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측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거기에 명분을 부여하려고 펀더멘털이 어떻고, 기업 가치가 어떻고, 올해 실적이 어떻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방송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나.

"하하, 방송에선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명분에 맞게 이야기해야 하니까."

― 주식을 잘하는 요령은.

"나는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 전문 갬블러는 열 판 중에 딱 두 판만 한다. 그러면 승률이 높다. 열 판 중에 8~9판 들어가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주식도 사고 싶은 주식이 100개 있으면 15개나 20개만 사야 한다."

― 너무 도박으로 보는 것 아닌가.

"증권 방송에 갔을 때 도박사를 진행자로 앉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기관이나 자금력이 큰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5000만~1억원을 굴리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주가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느긋한 투자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도박 입장에서 접근해야 그나마 잃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

―어떻게 방송과 인연을 맺었나.

"2008년 한국에 돌아왔다. 외국에서 우울증을 겪은 직후였다. 의사가 귀국해서 작은 것부터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처음 한 것이 내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이후 방송국에서 '내가 쓴 내용이 주식 이론과 맞물린다'면서 제안이 왔다."

―'잡주는 없다'라는 팟캐스트는 어떤 내용인가.

"재미와 함께 올바른 투자 마인드를 갖추는 법을 들려준다. 방송에서 차마 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안철수 원장의 기부재단 이야기가 나오면 안철수연구소 주식이 어떤 방식으로 처분되고, 어떻게 재단을 만들지 예측을 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실제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또 푸틴이 대통령 됐으니 주식시장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도 시나리오를 짜보는 그런 식이다."

사진을 촬영하려고 서울 힐튼호텔의 외국인 카지노 '세븐럭'을 찾았다. 카지노 측의 양해를 얻어 1억원어치의 칩을 그에게 주고 바카라 게임을 해보라고 했다. 카드 박스에서 카드가 빠져나올 때마다 그는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내리 다섯 판을 잃었다. 하지만 이윽고 딜러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앞에 칩이 쌓였다. 모두 8억원어치였다. 게임 시작 17분 만이었다.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갖게 됐을까. 그는 "정말 오랜만에 카드를 잡았다"며 "이제 도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17분 만에 8배를 따다니, 아직도 갬블러 아닌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현재 나는 증권방송 앵커이고 전직 프로 갬블러다."

―어떻게 도박을 시작하게 됐나.

"어린 시절 종로에서 자랐는데, '나쁜 형들'이랑 어울리며 당구장에 출입했다. 그때 당구장 주인이 '타짜'출신이었다.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그에게 당구와 도박을 배웠다. 가정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그에게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원하는 순서대로 카드를 섞는 손기술도 YMCA 뒷골목에서 배웠다. 미성년자 주제에 불법 하우스 도박판도 따라 다녀봤다. 그 시절은 그렇게 잠재성(?)을 발견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깡패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은 아들이 그런 것을 몰랐나.

"그래도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위기 때마다 막아준 선생님도 계셨다. 그랬기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다녀 와서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결코 화목하지 않았던 가족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사고는 없었나.

"고2 때 도박하는 형들과 창녕·부산·양산·충주로 다니다가 큰 사고가 한 번 났다. 도박을 하다가 속임수 쓴 게 들통나 도망을 가게 됐다. 판돈이 800만~900만원 정도였는데,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워서 경기도 포천 시골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영 신청을 했다. 당시 가족도 싫었고 내가 처한 상황도 너무 웃기고…. 군대 갔다 와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제대하고 평범한 삶으로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전역을 하고 과거 종로에서 알던 분 소개로 일본에 건너가 파친코에서 일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돌아왔다. 거기서 배운 것은 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슬롯머신을 하는 아저씨 아주머니 5명이 있었는데, 뭐 하는가 봤더니 파친코 기계마다 몇 시에 몇 번 터졌는지 일일이 기록해서 통계를 내고 있더라. 그들의 직업이었다. 그들이 월급쟁이의 두 배 정도 버는 것을 보면서 '도박이 데이터에 의해 움직이는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다."

―왜 돌아왔나.

"힘들었다.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로마로 떠났다. 남들이 대학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할 시기에 나도 떠난 것이다."

―이탈리아는 어떻게 가게 됐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음악을 전공했는데 이탈리아 유학 중이었다."

―거기서 전혀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 대기업의 지사에서도 잠깐 일했고, 다른 대기업 하도급업체의 월급 사장을 맡은 적도 있다."

―그런데 왜 도박에 다시 빠졌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다니며 도박이 스포츠 산업처럼 돼 있는 것을 알았다. 참가비를 내고 대회도 참가하고 실패도 많이 했다."

―혼자 익혔나.

"구스타페라고,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이탈리아계 영국인에게서 포커 게임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머릿속에 멀티 채널을 만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의 패를 생각하며 베팅을 하는지 배웠다. 그분도 전직 갬블러였다."

―어떤 내용이었나.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많이 배웠고, 상황을 스토리로 만들어 전체를 기억하는 법을 훈련했다. 예를 들어 길거리 커피숍에 앉아서도 사람 몇 명이 지나갔고, 무슨 색깔의 옷을 입었고, 자동차는 몇 대가 지나갔는지 같은 것을 외우는 훈련을 했다."

―포커에서 우승한 대회는 큰 대회들인가.

"라스베이거스에 비하면 상금이 큰 대회는 아니다. 1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로컬대회 수준이었다. 진짜 프로들은 굳이 대회에 나가지 않는다. 현금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게 돈을 버니까."

―해외 생활할 때 주수입원이 갬블이었나.

"그렇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느 순간 1등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다. 구스타페씨가 '언젠가 능력이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그런 시기가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심한 우울증이 왔다. 이후 태국으로 거처를 옮겨 3년 정도 지내다 귀국했다."

▼이태혁이 TV조선의 예능 프로그램‘매직홀’에 출연해 마술사 최현우가 작은 컵 속에 숨긴 공을 간단한 대화와 동작 분석으로 알아맞히고 있다.

―도박에 빠져 지낸 것에 따른 일종의 후유증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다. 거기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이 끊임없이 작용했던 것 같다. 나는 10년 이상 도박이라는 가상 세계에 빠져 있었고, 그 세계에서는 항상 1등이었는데 현실 세계에선 아무런 포지션도 없고, 한 분야에 깊이 있는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느냐, 계속 도박에 빠져 있느냐 하는 기로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 집중력은 이미 20대 때만 못했고 전성기도 지난 것 같았다. 점점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뤄 놓은 것은 없고…. 그래서 태국에서 아등바등했다."

―귀국 결정은 어떻게 했나.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운도 좋았다. 2003년 잠깐 귀국했을 때는 프로 갬블러를 '뒷골목 인생' 정도로 취급했는데 2008년 무렵에는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줬다. 누군가 나더러 공중파에 처음 등장한 도박사라고 하더라. 어쨌든 그런 시대 변화의 혜택은 본 것 같다."

그가 쓴 책에는 '인내심이 직관력을 이긴다' '마피아도 착한 사람을 뽑는다' '이긴 것만 기억한다면 당신은 중독된 것이다' 등 도박 체험에서 뽑아낸 경구 40개가 빼곡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콘텐츠를 뽑아 내고, 자기 자신을 콘텐츠화하고 있었다.

―책을 쓰려고 자료 수집을 따로 했나.

"자료 수집을 하지는 않았다. 처음 책을 쓸 때 내 속에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사람의 행동으로 심리를 어느 정도나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나.

"유난히 티 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동공의 크기나 턱의 각도, 광대뼈 주위의 변화를 주로 살핀다. 반응을 보기 위해 말로 중압감을 줄 때도 있다. 마지막에는 운도 작용한다.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아니다. 실력과 재주가 먼저고, 운은 10 중 2 정도 아닐까 싶다."

―외국에서 포커를 했다면 영어도 잘하나.

"영어를 못하면 포커대회에서 이길 수 없다."

―영어도 배우고, 일종의 심리학도 배우고 카지노가 당신에게는 대학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귀국 후 겸임교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고졸이라고 하니 난색을 표하더라. 그래서 사이버대학 심리학과에 등록했는데 강의를 들어보니 도저히 돈 내고 배울 만한 것이라고 생각이 안 되어 중도에 포기했다."

―10대 시절을 당신처럼 살았던 사람은 대부분 결과가 안 좋았을 것 같은데.

"나는 항상 1등이 되고 싶었다. 그것도 2등과 격차가 많이 나는 1등. 그것이 결국 어린 나를 승부의 세계로 불러들였던 것 같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능력은 원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것 때문에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다.

"서초동에서 월세 산다. 돈을 많이 번 적도 있지만 도박으로 번 돈은 결국 도박으로 다 잃게 되더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지금은 방송 출연료 알뜰히 모아 전세로 옮기는 계획을 갖고 있다."

―카지노에서 보낸 인생에 회의를 느끼나.

"회의는 안 느낀다. 하지만 도박에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나만큼 배우지 못하면 회의를 느낄 것이다. 게임으로서 도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스트레스 풀 정도면 된다. 그러나 감당치 못할 금액에 손대면 안 된다. 지금 내 생활, 방송 출연료와 강연료 받아 저축하는 지금의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