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 이름 뒤에 '선수'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는 걸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5일 오후 서울 리베라호텔. 이종범(42)이 정장을 입고 공식 은퇴회견장에 섰다. 지난달 31일 갑작스레 은퇴를 표명한 지 5일 만이었다. 취재진 60여명이 그가 은퇴회견문을 읽는 장면을 지켜봤다. 케이블채널에선 이례적으로 은퇴 회견을 생중계했다.

이종범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결코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은퇴는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라며 "괜한 오해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종범은 2008년 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처음 은퇴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 때 이후 하루도 은퇴라는 단어를 잊고 산 적 없다"며 "팀에 도움이 안 된다면 언제든 옷을 벗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도 4~5월까지 주전으로 뛸만한 실력이 나오지 않으면 은퇴 시기를 잡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종범은 1993년 신인 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일,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 일본 전에서 4강 진출을 결정짓는 결승 2루타를 쳤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1994년에 달성한 도루 84개(한 시즌 역대 최다)라고 했다.

내내 담담하던 이종범은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집사람과 정후(아들), 가연이(딸)…. 제가 아프고 다치고 슬럼프를 겪었을 때 가족이 없었다면…"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종범은 야구 선수인 아들 정후(14)군이 훗날 자신의 도루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종범은 40~50대 남성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선수 생활 마지막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우리 주위의 아버지들이었다. 나를 보며 힘을 얻는다고 손을 꼭 잡아주셨던 분들, 그 분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더 열심히 뛰었다.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