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베이징 총영사관에 3년 가까이 억류돼 있던 국군 포로 고(故) 백종규씨의 딸 백영옥(47)씨 가족 3명을 포함한 5명을 한국으로 보낸 것은 한중 관계와 국제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의 이번 조치는 북한이 중국 등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려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백씨 가족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해결을 시사했었다.
후 주석은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3월 회담에서도 탈북자 문제가 제기되자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대한 최종 결심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후 주석이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 한 달 넘게 탈북자와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엔인권이사회(UN HRC)에서도 탈북자 송환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미국에서도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 청문회'가 열린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 내에서도 미성년 탈북자가 3년 가까이 억류된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탈북자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가 외신 등을 통해 '3년 가까이 미성년자가 억류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고위 관리들이 외교관들과 공안의 일 처리를 비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기로 한 배경에 북한에 대한 '경고'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계획 취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탈북자의 한국행 허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베이징 총영사관의 탈북자 5명에 이어 선양·상하이 총영사관에서 2년 넘게 체류 중인 탈북자 7명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은 이 조치가 한중 관계를 고려한 '예외적인 경우'이며 다른 탈북자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한국행을 바라는 탈북자가 베이징의 외국 공관에 들어가더라도 어떠한 '배려'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탈북 백영옥씨 가족은?]
국군포로 부친 백종규씨, 아오지 탄광서 시달리다 "고국에 묻어달라"유언
언니는 세차례 탈북시도… 2004년 南으로 넘어와
아들·딸 베이징 영사관서 사춘기 보내며 고통
3일 한국 입국이 확인된 탈북자 가족 중 백영옥(47)씨 일가는 유해(遺骸)가 남한에 송환된 첫 번째 국군 포로 고(故) 백종규씨의 가족이다. 백씨의 친딸인 영옥씨는 자신의 딸(21)과 아들(17)을 데리고 지난 2009년 5월 탈북해 한 달 후 한국행을 희망하며 주(駐)베이징 한국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2년 10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백종규씨는 6·25 전쟁 때 국군 포로로 납북돼 함북 온성에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린 백씨는 지난 1997년 사망하면서 "시신이라도 고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싶었던 맏딸 영숙(55)씨는 세 차례 탈북하고 두 차례 강제 북송 당하는 고초 끝에 2004년 아버지 유해를 갖고 한국에 오는 데 성공했다. 백종규씨는 '국군 포로 유해 송환 1호'로 기록됐다.
영옥씨 가족은 언니 영숙씨가 탈북하고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갖은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영옥씨는 2009년 5월 당시 18세이던 딸, 14세이던 아들을 데리고 탈북해 한 달 만에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 측이 2010년부터 주중 한국공관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의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34개월간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왔다. 미성년자로 총영사관에 들어간 영옥씨의 딸과 아들은 사춘기를 좁은 총영사관에 갇혀 보내면서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