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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서울대 자연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A(23)씨는 졸업 직후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4년 내내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으며, 학점 4.3 만점에 4.2로 졸업한 그였다. A씨는 "지도해주신 교수님께 죄송스럽고, 스스로 학문을 버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러웠다"면서도 "솔직히 대학원 진학은 미래가 불투명해 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의전에 와보니 '공부는 재밌지만, 이공계 해봤자 보장되는 것 하나 없다'는 이공계 출신이 태반이었어요."

본지는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 전기 졸업생 중 자연대, 공과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 등 이공계열 수석 졸업자의 진로를 전수 조사했다. 대부분 4.3학점 만점에 4.2 이상을 받은 '공부의 신'들이다.

조사 결과 수석 졸업자 23명 중 25%가 넘는 6명은 각각 의전(의대 편입 포함)에 3명, 로스쿨에 2명, 치전에 1명 진학했다. 나머지는 유학 8명, 동(同)대학원 진학 8명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월 공대와 자연대 수석은 각각 서울대 로스쿨과 서울대 의전원에 진학했다.

서울대 이·공계 단과대에서는 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일반 학생들은 물론 수석 졸업생 등 최상위권 학생들마저 전문대학원으로 쏠리고 있다. 서울대 자연대 김명환(58·수리과학부) 학장은 "교수들이 일부 학생들은 설득해서 붙잡아 보기도 하는데 큰 효과가 없다"며 "이·공계 교수들이 자괴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자연대 수석으로 졸업한 B씨도 서울대 의전에 진학했다. B씨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데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설사 돈을 벌려고 (의전에) 진학했다 한들, 개인 선택을 비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를 수석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한 C씨는 "부모님이 로스쿨 진학을 권했다"며 "학과 교수님들이 알면 언짢아할 것 같아 비밀리에 원서를 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