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드라이버샷을 날린 타이거 우즈(37·미국)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18번홀(파4) 페어웨이로 걸어가자 "고! 타이거"를 외치는 팬들의 함성이 미국 골프의 성지(聖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 울려 퍼졌다. 대여섯 겹으로 티잉 그라운드 주변을 에워싼 인파 맨 앞줄에서 한 팬이 "타이거가 웃고 있다"고 말하자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뒷줄에서 카메라 든 손만 위로 뻗어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본 대회 때는 카메라 반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연습 라운드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린을 에워싼 팬들은 우즈가 걸어오자 챔피언을 맞이하듯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치 골프 최종 라운드가 벌어지는 일요일 같은 풍경의 월요일이었다.

골프 '꿈의 무대'인 마스터스 제76회 대회의 공식 일정이 시작된 2일(현지시각). 인구 20만명인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소도시 오거스타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일대 도로는 오전 7시를 넘어서면서부터 정체를 빚기 시작했다.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워싱턴 로드 양쪽 옆에는 '티켓을 구한다'는 종이나 팻말을 흔드는 팬도 적지 않았다.

오전 8시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가장 프라이빗(private)한 골프장으로 통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게이트가 일반 팬들에게 열리면서 2012년의 '마스터스 위크'가 막을 올렸다.

오메라 "타이거가 돌아왔다"

우즈는 오전 8시5분 자신의 멘토이자 골프 선배인 마크 오메라(55·미국)와 함께 10번홀에서 연습 라운드를 시작했다. 마지막 라운드에 입는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 셔츠를 입은 우즈는 산뜻한 얼굴이었다.

2주 전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923일간의 침묵을 깨고 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한 자신감이 힘찬 스윙과 표정에 묻어났다. 이미 네 차례(1997· 2001·2002·2005년)나 그린재킷을 입었던 마스터스의 달인답게 우즈는 '유리알 그린' 주변을 구석구석 돌며 어프로치샷과 퍼팅을 연습했다. 이틀 동안 연습 라운드를 한 오메라는 "자신감과 기량 등 모든 면에서 예전 타이거(old Tiger)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우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팬들과 골프 전문가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름이 로리 매킬로이(23·북아일랜드)였다. 한 50대 팬은 "우즈와 매킬로이가 이번 마스터스 우승을 놓고 대결한다면 전성기 시절의 펠레와 메시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꿈의 대결을 펼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며 흥분했다.

"한편의 대서사시가 될 것"

1997년 마스터스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골프 영웅이 된 우즈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타이거 키드' 매킬로이는 우즈와 닮은꼴 행보로 주목받았다. 작년 US오픈에서 우즈의 1997년 마스터스 우승에 버금가는 각종 기록을 세우며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고, 올해 3월 초 혼다 클래식 우승으로 우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젊은 나이에 골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문지 골프월드는 2일자 '2012 마스터스 특집'에서 복싱 글러브를 끼고 서로 노려보는 우즈와 매킬로이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천부적인 스윙을 지닌 '새로운 별' 매킬로이와 사상 가장 뛰어난 골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큰 우즈가 각각 최고의 기량으로 맞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마스터스에서 이뤄진다는 예고다. 메이저 14승을 거둔 우즈는 잭 니클라우스가 보유하고 있는 메이저 최다 우승기록(18승)을 경신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우즈의 이런 목표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선수가 바로 매킬로이다. 작년 마스터스에서 4타차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했다가 역전패를 당했던 매킬로이는 2일 오후 오거스타에 도착했다. 매킬로이는 "나는 작년보다 성숙해졌고, 우즈는 전성기 모습을 되찾았다"며 "영웅이었던 우즈와 정말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골프채널은 "마스터스가 한편의 대 서사시(epic Masters)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즈와 매킬로이의 대결 외에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우즈의 오랜 라이벌 필 미켈슨(42·미국)과 세계 랭킹 1위 루크 도널드(35·잉글랜드), 최근 시즌 첫 2승을 올린 헌터 메이헌(30·미국) 등 상위 랭커들이 최근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개막하는 올해 마스터스에는 97명이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