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새벽 1시 3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인근 도로. 박모(49)씨가 택시를 몰고 이 도로를 지나는 순간 갑자기 도로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박씨는 택시와 함께 지름 4m, 깊이 1.5m의 커다란 구덩이에 거꾸로 처박혔다. 그 순간 땅 밑에서 터진 온수관에서 섭씨 80도에 가까운 물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고, 허연 수증기가 연방 피어올랐다. 이 때문에 도로 옆을 지나던 시민 9명이 화상을 입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지역난방공사가 가설한 온수관이 터지는 압력에 의해 도로 지반이 약화, 무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분당에 사는 김규호(47)씨는 "자주 지나는 길인데, 도로가 꺼졌다니 황당했다"고 말했고, 회사원 김진규(29)씨도 "내가 탄 버스가 갑자기 지하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올 들어 서울, 경기, 부산,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도로나 인도가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위 왼쪽부터)2월 18일 인천 서구 왕길동, 3월 19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 (아래 왼쪽부터)3월 31일 경기 성남 분당구 정자동, 3월 3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장면. 이 사고들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하고, 일부 지역에는 가스공급이 중단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도로가 갑자기 꺼지는 침하(沈下)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에는 인천시 서구 검단사거리 인근 6차선 도로가 지하철 터널 공사 중 갑자기 붕괴,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정모(50)씨가 흙구덩이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19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 백병원 사거리 인근 인도가 갑자기 내려 앉아 길을 지나던 김모(31)씨가 다쳤고, 지난달 27일에는 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역 앞 노상에서 상수도관이 파열돼 지반이 3m 정도 내려앉았다. 또 4일 뒤인 지난달 31일 오후엔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도로가 울룩불룩 뒤틀리는 침하사고가 발생했다.

강남수도사업소 관계자는 "얼었던 땅이 녹아 지반이 연약해진 것이 사고원인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계속된 도로나 인도가 꺼지는 사고는 관리를 소홀히 한 인재(人災)라고 주장한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해마다 찾아오는 해빙기(解氷期)에 지반이 약해지는 것은 이미 상식"이라면서, "위험지대에 보강재를 설치하는 등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