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2시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법정. ‘서울대 입학’을 강요한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8개월 동안 안방에 시신을 방치한 지모(19)군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검은색 뿔테안경에 흰 와이셔츠, 회색 조끼를 입은 지군은 이날 시종 눈을 감은 채 재판에 임했다. 가끔 눈을 떠 배심원과 재판장을 바라봤고,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증인으로 나온 이모와 고모, 담임선생님과 친구의 진술이 이어지자 지군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살해당한 언니는)불쌍한 사람이었어요. 남편의 사랑을 바랐는데 그것도 실패하고, 자식만을 바라봤는데 그 자식 손에 갔네요.” 증인으로 나선 이모가 말을 꺼내자, 지군이 입을 벌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두 번째 증인으로 나선 담임교사가 “스승의 날에 지군이 찾아와 클라리넷을 연주해줬다. 감동을 받았고 가슴이 따뜻한 아이라고 느꼈다”고 하자 다시금 울음이 터졌다. 이때부터 지군은 수시로 눈물을 훔쳤다.
지군은 지난해 3월13일 오전 서울 광진구의 아파트 자택에서 부엌에 놓인 흉기로 어머니 박모(51)씨의 목을 찔러 숨지게 한 뒤 8개월간 안방에 시신을 방치했다. 그는 자신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국 62등’으로 고쳐서 어머니에게 보여줬다가, 어머니가 학교를 방문할 일이 생기자 성적표 조작이 들통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군의 범행은 5년 전부터 별거하며 매달 120만원 상당의 생활비를 보내오던 아버지가 1년 만에 집을 찾아오면서 드러났다. 안방 문이 공업용 본드로 막혀 있는 점을 이상히 여긴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했다.
지군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전국 62등의 성적에도 ‘정신무장’을 강조하며 야구배트, 홍두깨, 골프채 등으로 지군을 폭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지군의 친구 박모(19)군은 “지군의 집에서 피가 묻는 골프채를 본 적이 있다”면서 “(지군은) 성적이 안 좋거나 잘못을 했을 때 어머니에게 맞았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친구 이모(19)군도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 지군의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고 했다.
재판의 쟁점은 지군에 대한 감형 정도다. 변호인은 지군이 어머니를 찔러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흘 동안 어머니의 체벌로 인해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범행 당시 지군은 정상 상태”였다면서 “순간적인 분노를 심신미약이라고 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배심원 9명, 예비배심원 3명이 참여한 재판은 20일까지 계속된다. 지군 아버지의 진술도 이튿날인 20일 오전에 있을 예정이다. 배심원단은 지군이 최후진술 등을 들은 뒤 평결을 내리면 재판부는 이를 참고해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