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당(太子黨)의 맹장인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의 해임은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권력 투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중국 고위층 소식에 밝은 베이징의 한 분석가는 18일 "보 서기를 후원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바탕 권력 투쟁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망명 시도 사건과 뒤이은 보 서기의 해임으로 올 10월 차기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를 뽑는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베이징 정가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석, 총리 등 9명으로 구성되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를 최고권력기구로 하는 집단지도체제이다. 누가 차기 주석과 총리를 맡고, 어느 정파가 더 많은 상무위원을 배출하느냐가 권력의 향배를 가늠한다.
1997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사망한 이후 중국 공산당 내에는 지역과 출신 등에 따라 상하이방과 태자당, 공청단파 등 3개 계파가 형성됐다. 장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과 태자당 연합세력을 '장파(江派)', 공청단파를 '후파(胡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정파들은 상무위를 분점하면서 서로 경쟁과 타협을 통해 중국을 이끌어간다.
◇부패로 기울어가는 상하이방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 상하이시 서기에서 일약 당 총서기로 발탁된 장 전 주석은 당·정·군의 주요 요직에 상하이 지역 연고 인사들을 대거 배치하는 방식으로 권력 기반을 다졌다. 이들이 상하이방이다. 상하이방은 후 주석이 집권한 2002년에도 상무위를 압도했다. 9명의 상무위원 중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제외한 7명이 장 전 주석 계열이었다.
그러나 2006년 잇단 부패 추문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은 푸젠(福建)성의 대형 밀수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고,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는 사회보장 기금 유용 혐의로 낙마했다. 차기에도 장가오리(張高麗) 톈진시 서기, 장더장(張德江) 충칭시 서기가 상무위원 후보로 거론되지만, 정파로서 기세는 크게 꺾였다는 게 베이징 정가의 평가이다.
◇태자당, 강한 주인의식
장 전 주석은 2007년 17차 당대회를 앞두고 상하이방의 대안으로 태자당을 밀었다. 태자당 막후 실세로, 친분이 두터운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과 손을 잡고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차기 지도자로 만든 것이다. 태자당이 정파로서 기반을 잡은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시 부주석, 쩡 전 부주석이 천거한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 등이 태자당 인사들이다. 차기에도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서기,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등이 상무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태자당은 당에 대한 주인 의식이 강하다. 위키리크스가 2010년 공개한 주중 미국대사관의 2009년 7월 외교전문에는 태자당의 한 인사가 "우리 아버지가 중국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너희 아버지는 신발끈을 팔지 않았느냐"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후 주석과 원 총리 등 건국 후 관료로 성장한 정치인들을 '상점 지배인' 정도로 보면서 혁명가의 혈통인 자신들을 당의 '주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태자당은 어린 시절부터 중앙 무대를 체험해 권력의 속성에 밝은 것이 강점이다. 다만, 특권 의식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감이 부담이다. 이들은 보 서기 해임으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시 부주석 집권 10년간 세력을 더 확대할 전망이다.
◇평민 출신의 공청단파
공청단파의 기원은 개혁파의 대부로 꼽히는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후 전 총서기의 추천으로 중앙 무대에 데뷔했고, 덩샤오핑에 의해 장쩌민 전 주석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공청단파는 후 주석 집권기에 빠르게 성장해 중앙과 지방의 요직에 대거 진출했다. 후 주석은 2006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상하이방의 황태자 천량위 전 서기를 치며 공청단파의 입지를 넓혔다. 권력 교체를 앞둔 올해도 차기 주자인 보시라이 서기를 해임하며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조직부장,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 류윈산(劉雲山) 중앙선전부장 등이 차기 상무위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공청단파 인사들은 출신 가정은 평범하지만 명문대를 나온 고학력자가 많다. 공청단 고위간부로 발탁돼 철저한 경력 관리 속에 성장한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인 성향의 인사가 많다. 다만, 지방 현장 경험이 부족하고, 권력의 속성에 어두운 것 등이 약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