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인천연일학교의 치과보건실에서 조촐한 기념식이 열렸다.
정신지체 장애학교인 이 학교에 지난 1999년 문을 연 치과보건실을 깔끔하게 새로 단장한 것을 기념한 행사였다. 시교육청이 5500만원을 지원해 치과용 엑스레이와 멸균소독기 등 여러 진료 기구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학생 수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졸업 뒤 취업을 준비하는 전공과까지 모두 246명. 이 작은 학교에 의사와 간호사가 자리를 지키는 번듯한 치과보건실이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보건실 소장인 우광균(82) 박사 덕분이다.
인천공고와 서울대 치대를 나와 인천 중구에서 40년 동안 '우치과'를 운영한 그는 70세가 되던 해 병원을 접고 이 학교로 왔다.
"그 나이가 되니까 문득 좀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마침 당시 교육감이 초등학교 동창이라 만나서 의논을 하고 이 학교에 찾아와 먼저 제안을 했지. 교실 하나를 개조해 치과보건실로 만들고, 병원에서 쓰던 치료기구를 몽땅 트럭에 싣고 왔어."
그 뒤 방학 기간을 뺀 매주 월~금요일 오전에 그는 이곳에서 충치 치료와 치아 홈메우기, 스케일링, 이에 불소 씌우기 등 일반 치과와 똑같은 진료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차례를 정해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며, 올바른 이닦기 방법 등 이 관리 요령도 배운다. 우 소장은 아무 대가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를 한다. 학생들은 모두 무료로 진료를 받는다. 지난 10여년간 치료 건수가 모두 2만200여건. 이 덕분에 충치가 있는 학생이 처음엔 54%였다가 이제는 22%로 줄었다.
장애학생 진료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딱하다는 마음만 갖고 시작했는데 해보니까 힘들더라구. 진료대에 앉자마자 우는 아이도 있고, 겁이 나니까 진료 중에 갑자기 내 손가락을 물기도 하고, 너무 긴장해서 소변을 보는 아이도 있고…. 내 준비가 부족했던 거야."
우 소장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애인 심리와 교육 분야의 공부를 계속했다고 한다. 또 간호사와 함께 연구해 장애 학생들을 편하게 눕힐 수 있는 진료대를 만들었고,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흰색 가운 대신 곰돌이가 수놓아진 컬러 가운을 두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젠 아이들이 치료할 일이 없어도 '할아버지'하며 그냥 진료소에 찾아오곤 한단다.
그런데 우 소장의 이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이를 배우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눔이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6년여 전부터 동네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학원의 원장이 그의 활동을 알고 "박사님, 그 모습이 참 좋다"면서 그림 동호인 30여명을 모았다. 그리고 사할린 동포나 병원 등지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지도하고 전시하는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또 인천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 의사 8명이 이달부터 번갈아 이 학교에 나와 우 박사와 함께 봉사 진료를 하고 있다.
요즘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생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는 그는 '배려와 나눔'에 대한 한 기억을 얘기했다.
"어릴 때 고향(화성)에서 아버지가 장에 가실 때면 잘 따라다녔어. 가면 맛있는 것을 사주시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집 앞 개울을 건널 때면 아버지가 늘 징검다리를 손보시는 거야. 돌이 흔들거리거나 빠진 것이 없는지…. 그런 것들을 찾아서 바로 제자리에 놓아두고야 집에 돌아오셨어. 다른 사람들 다니기 편하게 그러셨던 거지."
그런 기억들이 아마도 그의 몸속에 하나의 정신으로 흐르고 있는 듯했다.
"젊었을 때는 병원 하면서 돈 많이 버는 것에 보람을 느꼈지. 그런데 말이야, 요즘 찡그리는 아이들 돌봐주고 돌아가는 보람이 훨씬 커."
직접 승용차를 몰고 다닐 만큼 건강한 우 소장은 "내가 사람을 못 알아볼 때까지 학교에 있기로 간호사랑 약속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