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충칭시 서기가 지난 15일 돌연 서기직에서 해임되면서 그 이유를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보 서기가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로 정치적 곤경에 처하긴 했지만, 오는 10월 18차 당대회까지는 무난히 현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유력한 차기 지도자 후보군에 속했던 보 서기는 왜 결국 낙마했을까. 중국 공산당 내부의 파벌경쟁과 노선갈등이 뒤얽힌 이 사건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보 서기, 욕심 지나쳐 선을 넘었다

충칭시 서기 해임은 정치국 상무위의 결정 사항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파는 물론, 보 서기가 소속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주도의 태자당·상하이방 연합세력도 그의 해임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태자당·상하이방이 그를 보호하지 못한 것은 보 서기가 최고지도부에 진입하려는 욕심이 지나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태자당의 일원인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은 지난 4일 전인대 충칭시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당의 정치기율을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왕리쥔 사건, 심각한 정치기율 위반

보 서기 해임의 표면적인 이유는 당국이 왕리쥔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중앙조직부장은 15일 해임 사실을 발표하면서 "왕리쥔 사건이 불러온 엄중한 정치적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보 서기의 측근이었던 왕 부시장은 충칭시 공안국장에서 해임된 직후인 지난 6일 청두(成都) 소재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하루 동안 체류했다. 이때 보 서기의 비위사항이 담긴 파일을 들고 갔다는 소문도 있다. 왕 부시장은 당시 갑자기 해임되자 보 서기가 그간 문제삼지 않았던 비리를 이유로 자신을 숙청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 미국 망명을 시도했다는 관측이 있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 볼 땐, 항명인 데다 미국에 국가 기밀을 유출하려 한 사건인 만큼 심각한 정치기율 위반이었다. 따라서 그를 수하에 둔 보 서기도 관리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후 주석, 홍색 문화 운동에 반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14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 보 서기의 홍색문화운동(唱紅)이 중요한 해임 사유임을 시사했다.

보 서기는 지난 2010년부터 대대적인 홍가(紅歌·중국혁명가요) 부르기 운동을 벌이고, 관료들을 농촌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홍색문화운동을 펼쳐왔다. 또 임대주택 건설, 도·농 통합 등 분배 중심 정책과 이 운동을 결합해 '충칭모델'이라는 좌파 정치노선도 만들어냈다. 오는 10월 18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 선출을 노린 노골적인 업적 쌓기라는 분석이 많았다.

원 총리는 지난해 4월 한 홍콩 인사에게 "아직도 문화대혁명의 폐해가 남아 중국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 주석과 원 총리는 정치국원인 보 서기가 정치국회의라는 내부 공론의 장을 거치지 않고, 지방 차원에서 대중운동을 벌인 데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중을 동원해 정상적인 당·정 기구를 마비시킨 문화대혁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6일 "보시라이의 해임은 중국의 이너서클이 마오쩌둥(毛澤東) 식의 정치인을 배제하기로 합의한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최근 기자회견이 해임의 도화선

중화권 언론들은 16일, 지난 9일 보 서기의 전인대 기자회견 발언 내용이 갑작스러운 해임의 도화선이 됐다고 분석했다. 보 서기는 당시 '후 주석이 왜 충칭을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 "후 주석이 충칭을 매우 중시해 2007년 중요한 지시를 내렸으며, 충칭은 이를 따라갔다. 후 주석이 충칭에 오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후 주석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항명으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후 주석은 자신의 지시와 보 서기의 정치노선을 동일시한 이 발언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권의 매체는 소식통을 인용, "후 주석이 당초 18차 당대회를 앞둔 권력 투쟁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조용히 넘어가려다 이 발언을 듣고 해임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보 서기, 최고지도부 비난설도

왕리쥔 부시장이 보 서기가 장 전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국가안전부에 제출했다는 미확인설도 나왔다. 미국의 반체제 화교 신문 보쉰(博訊)에 따르면 보 서기는 이 테이프에서 장 전 주석을 '현대판 서태후(西太后)', 후 주석을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 시 부주석을 유비의 아들인 유선 등에 비교하면서 "내가 중국을 이끌게 되면 무능하고 지혜도 없는 지금의 상무위원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시 부주석 역시 보 서기와 같은 태자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