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담당자, 증권사 임직원, 금융기관 간부 등이 결탁해 부실기업에 자금을 조달해주는 대가로 불법 사례금을 주고받는 등 '검은 거래'를 일삼아온 여의도 금융인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렇게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 중 4곳은 이미 상장 폐지돼 결국 개인 주식투자자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최재호)는 14일 재정 상태가 부실한 기업의 자금조달과 인수 등을 명목으로 억대의 불법수수료를 챙긴 H증권사 전직 이사 배모(45)씨 등 증권사 전·현직 임원 10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 대가로 불법 사례금을 주고받은 S캐피털 이사 김모(47)씨 등 4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모두 5000여억원의 채권 발행이나 대출을 도와주는 대가로 35억여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은 거래에 관여한 증권사 관계자들은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의 사정을 악용하기도 했다. 자금 사정이 악화돼 부도나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들에 먼저 접근,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불법을 부추긴 것이다.

H증권 이사 한모(48)씨는 기업 실사를 제대로 할 경우 유상증자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발행이 어려운 7개 기업을 상대로, 2006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500억원대의 유상증자와 BW 발행을 중개했다. 이 과정에서 2개의 차명 법인을 동원해 자금조달 회사와 허위자문계약을 체결하고 부인과 내연녀 등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로 8억여원을 챙겼다.

고객들이 맡긴 돈 1500여억원으로 부실한 회사채 등을 매입해주는 대가로 4억여원의 뒷돈을 챙긴 금융권 간부도 적발됐다. 수협중앙회 조합자금부장 임모(49)씨는 H증권사가 중개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인수해 주는 대가로 10차례에 걸쳐 4억7700만원의 뒷돈을 받아 챙겼다. 임씨는 재무 상태가 부실해 다른 제1금융권에서는 인수를 꺼리는 건설사 회사채까지도 인수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H증권 배모(45) 이사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건설사가 저축은행 8곳으로부터 550여억원을 대출받도록 알선해준 대가로 2억90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금융기관 출신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불법 투자중개업자, 이른바 '금융 부티크'들도 개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 임원들은 이렇게 조달받은 회삿돈 200여억원을 채무변제 또는 주가조작을 위한 준비자금으로 썼다.

검찰은 작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코스닥 상장기업의 횡령 등 기업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기업 자금조달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비리를 집중 수사해왔다.

신유철 남부지검 차장 검사는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고 부실기업 등에 대출이나 채권 발행을 도와주고, 리베이트를 챙기는 여의도 금융가의 불법 거래 구조는 결국 선의의 개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보게 하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