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55)씨 등 한국인 3명이 체포·구속 영장 없이 지난 1월 초부터 필리핀 마닐라 이민국 수용소에 두 달 가까이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필리핀 당국은 이들에게 두 가지 혐의를 두고 있다.

우선, 서씨 등이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붙잡혔다가 지난해 말 이민국 감시를 뚫고 도주한 한국판 '오션스일레븐'(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카지노를 상대로 사기도박을 벌여 거액을 챙기는 영화) 사기도박 주범 김모(54·캐나다 교포)씨를 도와줬다는 혐의다.

김씨가 도주하자 현지 언론들은 김씨가 이민국 관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줬다고 보도했다. 이민국장이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발칵 뒤집힌 이민국은 김씨 체포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서 서씨 등 3명을 붙잡았다.

서씨측은 김씨의 고향 친구이자 후배로서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된 김씨에게 음식이나 옷가지 등을 전해주고 통역 등을 도와줬을 뿐 김씨 도주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함께 수감된 이모(46)씨가 피부병을 앓는 등 세 명 모두 장기간 구금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혐의는 서씨 등이 A 회사에 근무한다며 위킹 비자를 발급받았지만, 단속 당시 B 회사에 일하고 있었다는 것. 서씨측은 A사 사장이 이와 관련해 이민국에 "실질적으로는 우리 회사(A사)에 고용돼 있다"고 해명했다고 주장했다. 또 5~20년 동안 필리핀에서 살았는데, 이민국이 갑자기 비자를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빨리 재판을 받아 죄가 있으면 형을 살고, 없으면 풀려나길 바란다"면서 "영장도 없이 잡혀 들어와 두 달이나 갇혀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또 "김씨 도주 사건으로 화가 난 이민국장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이민국 관계자로부터 김씨가 잡히든지, 자수하지 않으면 풀려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한 국제법 전문가는 "1966년 국제연합(UN)에서 채택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9조에 따르면, 누구나 합리적인 기간 안에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면서 "필리핀 국내법이 어떻든 간에 국제법상으로 두 달은 지나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제법은 큰 방향만 제시한 것이고, 필리핀에도 사법 주권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신속한 처리를) 무조건 강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