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환율전쟁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이 대규모로 돈을 풀어 달러화와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자, 브라질, 인도, 필리핀 등 신흥국들도 잇따라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낮춰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처럼 저엔화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경우 수출경기가 나쁜 중국도 환율방어에 나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브라질 "환율전쟁, 계속되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7일(현지시각) 기준금리인 셀틱금리를 종전의 10.5%에서 0.75%포인트 인하한 9.75%로 낮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0.5%포인트 인하를 예상했었다.
브라질이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린 것은 선진국들이 계속해서 돈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초저금리 기조를 2014년까지 이어간다고 밝혔고, 물가 압박이 없는 양적 완화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은 2차 장기대출(LTRO)를 통해 시중에 약 5300억유로를 풀었다.
브라질 등 신흥국은 지난 2010년처럼 화폐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 수출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는 미국 달러화 대비 8% 급등했다.
지난 1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선진국이 시행하는 변질된 통화정책 때문에 달러화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며 “과도한 유동성 유입을 막을 수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도 "선진국이 브라질의 통화를 희생시켜가면서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환율방어에 나설 의지를 밝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 인도네시아의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에 나섰다.
일본 중앙은행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연 1% 오를 때까지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겠다며 자산매입기금을 55조엔에서 65조엔으로 확대했다. 이후 엔화 가치는 달러당 80엔을 넘어서며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 10일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지급준비율을 0.75%포인트 낮췄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물가가 지난 1월 2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6.55%)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브릭스(BRICs)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라 물가 압력 때문에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베트남도 금리를 낮출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베트남은 현재 15%인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 中 참여하면 상황 복잡해져
환율전쟁이 확전되느냐의 여부는 중국의 참여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올해 위안화의 변동폭을 확대해 시장의 수급에 따라 환율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인위적 통화 가치 조정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수출 실적은 계속해서 악화하고 있고, 주요 교역 대상국인 유럽의 유로화와 일본의 엔화 가치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이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소시에테제너럴의 알버트 에드워드 전략가는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수출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중국은 경제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는 등 어려운 모습이 계속될 경우 얼마든지 위안화 가치를 내리기 위해 국채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가 20개월 만에 최저치인 3.2%를 기록하며 물가 압력이 크게 줄었고, 지난 1~2월 산업생산 증가율이 예상치인 12.3%에 못 미치는 11.4%를 기록한 점도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중국이 환율전쟁에 참가할 경우 주요 교역대상국들의 수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 고유가에 따른 고물가는 확전 가능성 낮춰
지난 2010년 시작돼 2011년 9월경 끝난 지난 1차 환율전쟁은 신흥개발국을 중심으로 통화가치보다 물가 압력이 더 큰 문제가 되면서 종료된 바 있다. 당시 식료품 값 폭등과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아랍의 봄'에 따른 유가 급등이 영향을 미쳤다.
다만 고유가에 따른 높은 물가 압력 때문에 환율전쟁이 대규모로 확전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각국의 환율 정책이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이탈로 롬바르디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 정부가 헤알화 강세를 실제로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단지 가치 상승을 조금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