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사회정책부 기자

경남 함양군 산자락의 단칸방에서 살면서 염소를 팔아 모은 돈 1억원을 기부한 정갑연(78) 할머니(본지 5일자 A13면 참조)는 "죽을 때까지 나라 도움 안 받고 내 힘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정 할머니는 여든이 가까운 세월, 국가로부터 받은 게 별로 없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 그 흔한 교육혜택도 한 푼 받지 않았다.

병원에도 자주 가지 않아 의료복지혜택도 거의 받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내 힘으로 살겠다"는 그는 혼자 힘으로 살아왔고, 염소를 키워 번 돈마저 남을 위해 내놓았다. 그의 이런 인생 이야기가 보도된 5일 기자는 정 할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었다.

지금 그가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은 기초노령연금(월 9만1000원)이 전부였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산에서 캔 나물 반찬으로 끼니를 이어간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나는 아직 혼자서 염소를 키울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니까 내 힘이 닿는 데까지 그동안 하던 대로 염소를 키울 것"이라 했다. "그러다 죽을 때 혹시나 돈 남으면, 그때 가서 또 기부하면 되지"라며 수줍게 웃었다. "다른 노인들처럼 아프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마냥 노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내 힘으로 살다 가는 것이 소망"이라 했다.

"노인정에 가서 놀고, 온천이니 바닷가니 하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 다니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나는 염소들을 돌보는 것이 좋아. 나만 보고 사는 애들인데…."

정 할머니는 하나뿐인 어린 딸이 죽고, 홀로 어렵게 살아온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손 벌리기에 앞서 스스로 부딪치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정 할머니는 복지가 무엇인지,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복지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줬다. 선거철을 맞아 우리 정치권이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럽 국가들에게 유행병처럼 번졌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식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걸 나라가 해결해주는 '이상적 복지'는 더 이상 존립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경험했고, 그런 복지를 이상향으로 꿈꾸는 나라도 이젠 지구상에 찾아보기 힘들다.

과잉복지의 부메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면서도 우리 정치권은 선거에서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감당 못할 공약을 내뱉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도 '복지천국'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복지란 누구에게나 공짜밥, 공짜집, 공짜 일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열심히 일해 스스로 삶을 이어가고, 그래도 안 되는 기본적인 생활을 국가가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과잉 복지논쟁이 한창인 지금 정 할머니는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이 가야 할 길을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