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에는 시립박물관이 없다. 인구가 29만명으로 전남 22개 시·군 중 가장 많은데다 오는 5월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려 3개월 동안 관람객 800만명이 찾게 되는데 그 흔한 박물관이 없다. 국제 행사를 치르는 도시라는 게 무색하다.
1998년 4월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 '3여(麗)통합' 이후 박물관 건립 목소리가 높았다. 2005년 당시 김충석 시장(민선 3기)이 박물관 건립 국비 68억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수시는 13억원을 들여 실시설계까지 진행하다 유물이 적다는 이유로 돌연 건립을 백지화했다. 국비는 2007년 반납했다.
국비를 반납한 시장은 2006년 7월 당선된 오현섭 전 시장(민선 4기·수감중)이다. 국비를 받고도 정치적인 이유로 박물관 건립을 포기했다는 게 정가의 정설이다. 김 시장은 박물관 건립을 강하게 추진했으나, 재선에 실패하면서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여수시는 "이게 뼈아픈 대목"이라며 "정부에 박물관 건립 예산을 재차 요구할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4년간 공백을 딛고 연임에 성공한 김 시장(민선 5기)은 최근 박물관 건립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물관 건립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그 이유로 그는 "각종 건설현장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많지만 보관할 박물관이 없다"며 "더욱이 엑스포 개최 이후 여수 방문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지역의 역사를 알리려면 박물관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출토유물 2013점이 광주박물관 등 7개 박물관에 분산돼 보관 중이다.
이를 위해 여수시는 지난해 말 전남도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지방재정 투융자 심사를 요청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현재 박물관 건립 타당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건립 타당성 평가 결과에 따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국비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시민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박물관 건립을 원한다. 2010년 8월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직원과 여수시문화유산보존위원회 위원 4182명은 시에 박물관 건립을 촉구했다. 이들은 당시 건의문에서 "박람회 개최도시에 작은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우리 시의 문화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며 "박물관 건립으로 유서 깊은 여수의 많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시는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였고 유물확보, 여론조사 실시, 박물관 현황조사 등 박물관 건립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11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전화ARS 방식)한 결과, 시민 82%가 시립박물관 건립에 찬성했다. 박물관 장소는 돌산청사(3청사)가 거론된다.
인근 도시인 순천의 경우 지난해 시립 뿌리깊은박물관이 개관했다. 순천대에도 생활사박물관이 있다. 목포는 말할 것도 없다. 인구 24만의 이 도시에는 국립 해양유물전시관을 비롯해 자연사박물관, 생활도자박물관, 목포 문학관, 근대 역사관 등 시립 박물·전시관이 4곳에 달한다.
김 시장은 "내년 국비확보에 성공해 꼭 박물관을 조기에 건립하겠다"는 입장인데, 정부가 되돌려 받은 예산을 다시 지원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