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 선임기자

가지와라 도모유키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느 날 소방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바꿨다. 병원에서 가지와라는 차가운 시신(屍身)으로 변한 아들을 만난다. 동급생들은 살려달라고 비는 아이를 비참하게 살해했다. 그 뒤 가지와라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의문투성이다.

일본에서 '이지메(いじめ)', 즉 집단따돌림과 폭행으로 중학생 집단자살이 잇따른 게 1986년이다. 벌써 30년을 바라본다. 겉(다테마에·建前)과 속(혼네·本音)이 다르다는 일본인이기에 내성이 생겼을 법하지만 소설 속 가지와라 같은 분노까지 억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느낀 불합리는 이렇다.

'왜 나는 진상을 신문을 통해 알아야 하나' '왜 가해자는 보호되고 피해가족은 외면받나' '왜 제대로 된 사죄가 없나' '왜 소송 거는 게 이리 힘들고 이겨도 피해자만 궁핍해지나'…. 가지와라의 결론은 직접응징, 즉 청부살인이었다. 소시민은 마침내 괴물이 돼버렸다.

이 으스스한 스토리가 A를 만난 후 떠올랐다. 그가 불쑥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아느냐"고 물었다. 기억의 창고를 뒤진 끝에 그 사건이 작년 12월 전국을 뒤흔든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걸 떠올렸다. 피해자는 대구 중학생과 동갑인 소녀였다.

한국인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뉴스가 천지개벽(天地開闢)할 뉴스에 밀려나는 데 익숙하다. 롤러코스터 같은 나라에서의 100일은 꽤 긴 시간이다. 석 달도 더 지난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은 지금 어떻게 처리된 걸까.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대구사건은 경찰이 뛰어들자 금세 진상이 밝혀졌다. 가해자들에겐 중형이 선고됐다. 결말이 지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 52일이다. A가 말한 서울사건은 77일 만에 담임과 가해 혐의 학생 8명을 검찰에 송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A는 교육열 높고 집값도 만만치않은 그 동네에 살다가 이사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또래의 자녀가 있어 양쪽 모두를 직·간접으로 알고 지냈다. 소녀에게 불운이 드리워진 건 지금부터 3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였다. 예쁘고 활발한 성격의 소녀는 전학 후 곧 부(副)반장이 됐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찾아온 것은 왕따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전학 온 주제에 나댄다"며 그를 외면했다. 동물은 약자를 보면 물어뜯는다. 아이들은 인터넷 학급카페에서도 합세해 그를 조롱했다. 소녀의 곤경을 안 아버지가 담임을 만나 항의했다.

카페는 폐쇄됐다. 그 사이 초등학교 시절이 끝났다. 소녀는 명문(名門)으로 소문난 중학교에 배정됐다. 그래도 뇌리에 뭔가 남았다. 검은 추억이다. 소녀는 자기가 왜 미움을 샀는지 되짚어봤을 것이다. 억울해도 저항 대신 순응하는 게 낫다는 준칙을 세웠을 수도 있다.

'화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禍不單行)'는 말이 있다. 평온한 시간은 1년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소녀는 8명의 표적이 됐다. 그중 셋이 유독 심하게 괴롭혔다. 작년 4월부터 "나만 세상 뜨면 그만…"이라는 유서를 쓰기까지 맞고 망신당하는 악몽이 되풀이됐다.

소녀의 부모가 또 나섰다. 학교에 다섯 번 찾아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게 불행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소녀의 부모가 찾아온 것이 학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고자질 죄(罪)까지 추가된 소녀에게 물벼락 끼얹기, 도시락에 물 붓기가 죽는 날까지 계속됐다.

이후의 사건 진행은 대구사건과 영 다른 쪽으로 갔다.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피해자 가족을 어루만져야 할 학교의 태도가 아리송했다. "꽃 한 송이도 못 가져오게 막았다" "학교가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그 학교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그 와중에 교무일지(敎務日誌) 조작설까지 나왔다. 딸을 잃은 어머니는 "학교가 '엄마가 이상해 아이가 수면제를 먹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주변엄마들이 아파트값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고도 했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가해경위 파악과 처벌은 그 동네에선 뒷전인 것 같다. 오히려 '명문' '아파트값' 같은 말이 등장하는 걸 보면 소설 속 가지와라가 놓인 무대보다 훨씬 더 무섭다. 화재현장에선 아무리 흠뻑 물을 뿌려도 불씨가 살아있다는 말이 있다. 이 사건이 바로 그렇다.

소녀의 동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개명하고 할머니집으로 간 걸 보면 소년에게 세상은 피해자를 돕고 위로하는 따뜻한 곳이 아니다. 가족을 집단의 힘으로 무력화시켜 삼키려는 쓰나미처럼 공포스러운 곳으로 비칠 것이다. 고통은 반대쪽에도 있다. 한 가해 혐의자의 어머니도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일탈하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제 소녀의 자살에 간여했다는 말이 나온 후 그의 심경이 어찌됐을까를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꽃피우지 못한 청춘(靑春)은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