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탈북해 중국 베이징의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갔던 탈북자 백영옥씨와 아들·딸이 4년째 베이징 총영사관에서 사실상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영사관에 들어올 때 열여덟, 열네 살이었던 남매는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스물한 살, 열일곱 살이 됐다. 중국 정부가 백씨 가족을 포함해 우리 공관에 피신해 있는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백씨 가족은 일절 바깥출입을 못한 채 영사관 한쪽 30평짜리 단층 건물에서 지내며 세 끼 식사를 외부에서 들여오는 도시락으로 해결해왔다.
백영옥씨는 6·25 국군 포로 백종규씨의 둘째 딸이다. 백종규씨는 탄광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지면서 "시신이라도 고향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큰딸은 이 유언을 따라 2004년 아버지 유골을 안고 탈북해 백씨는 백골로 국군묘지에 묻혔다. '국군 포로 유해 송환 1호'다. 언니가 탈북한 뒤 동생 영옥씨 가족은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갖은 고초를 겪다 탈북했지만 중국 정부가 난민(難民)으로 인정하지 않아 중국에서 징역 아닌 징역 생활을 하고 있다.
백씨 가족과 같은 탈북자는 상하이와 선양 총영사관에도 20명 가까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2001년 탈북자들이 처음 한국 영사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2~3개월 만에 한국에 보내줬지만 요즘은 한국길을 꽉 막아버렸다. 탈북자들에게 한국 공관에 들어가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라고 한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국경을 넘은 '불법 월경자(越境者)'라서 북한으로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자 가운데서도 한국으로 오려다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는 노동교화소를 비롯한 수용시설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백씨 가족은 국군 포로 가족이어서 다른 탈북자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 놓일 게 뻔하다. 언니의 탈북으로 겪던 감시와 박해를 피해 아버지 고향으로 가려고 탈출한 백씨 가족이 난민이 아니라면 중국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난민이라는 것인가.
중국 당국은 부모 된 마음으로, 3년이나 갇힌 채 청소년기를 흘려보내고 있는 두 남매의 처지를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