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경제지표 호조에도 미국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펼 것인가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버냉키 의장은 29일(현지시각)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 "미 고용시장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며 "일자리가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내수와 생산이 강하게 성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전했다.
최근 미국 실업률은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월 실업률은 8.3%로, 지난해 8월(9.1%)과 비교해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연준 안팎에서는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버냉키 의장은 그러나 "실업률이 이렇게 빠르게 개선된 것은 예상보다 급격한 것이었다"며 "실제 경제 상황이 그렇게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실질 가계소득이 많이 늘어나지 않은 만큼 소비를 뒷받침해줄 만한 펀더멘털(경제 기초)이 여전히 약하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실업자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그는 "6개월 이상 실업 상태인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직업능력을 잃을 뿐 아니라 업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아예 무뎌질 수 있다"며 "일자리를 빠르게 만들고, 경제가 정상적인 고용시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회복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버냉키 의장은 이른바 3차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최근 고용시장 지표와 내수 및 생산 지표가 다르게 나오는 것으로 비추어볼 때, 새로 나오는 지표로 경제 회복세를 좀 더 감안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금융시장 자문회사인 디시전 이코노믹스(Decision Economics)의 캐리 리헤이는 "버냉키는 연준이 조만간 3차 양적완화를 펼 것이라고 암시하지 않은 데 투자자들은 실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뉴욕 증시는 하락 마감했다. 금값도 하루 사이 4% 넘게 떨어지며, 올해 들어 하루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연준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는 한편 2조30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했다. 연준은 지난달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이 같은 초저금리를 2014년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버냉키 의장은 내년 물가 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최근의 고유가가 이어질 경우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현재 상황에서 유가가 오르는 것은 일시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