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축가 왕수

1970년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지역. 중국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는 이곳에 손으로 뚝딱뚝딱 무언가 만들기 좋아하는 어린 소년 하나가 살았다. 음악가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는 예술적 감성이 남다른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려 정성을 다했다. 꼬박 나흘 밤낮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에서 4000㎞나 떨어져 있는 베이징(北京)으로 여행 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모 손을 잡고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사이 소년의 마음엔 자연스레 땅에 대한 감(感)이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 이 소년은 세계 건축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

28일 '프리츠커(Pritzker)상' 2012년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 건축가 왕수(王樹·49·사진) 얘기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미국의 프리츠커 가문이 소유한 호텔 그룹 하얏트 재단이 제정해 매해 시상하는 건축상.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 권위가 있다.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 노먼 포스터 등 세계적 유명 건축가가 역대 수상자다. 한국인 수상자는 아직 없다.

세계 건축계에선 이번 왕수의 수상을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제 건축계에 무명(無名)이나 다름없는 순수 토종 중국 건축가의 수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1983년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페이가 이 상을 탄 적이 있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의 수상은 처음이다. 우루무치 출신의 왕수는 난징(南京)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항저우(杭州)를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건축가인 부인 루웬유와 함께 '아마추어 건축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닝보현대미술관', '닝보역사박물관', '중국예술학교 샹산 캠퍼스' 등을 설계했다. 해외에선 작품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닝보역사박물관’. 역사성을 담기 위해 지역의 재활용 건축 소재를 써서 만들었다. 왕수는 “1주일 넘게 도시와 지형을 연구하고 나서 디자인을 구체화한 다음, 잠 못 든 어느 날 밤 하루 만에 도면을 그렸다”고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장인 피터 팔룸보 경은 "건축에 있어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며, 중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건축이 전통에 기반을 둬야 할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며 "왕수의 작업은 지역의 건축적 맥락(context)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띠고 있어 이런 논란을 초월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왕수는 중국적 재료인 회색 전돌과 나무를 주로 쓰는 등 중국의 전통을 건축에 접목했다는 평을 받는다. 중국예술학교 샹산 캠퍼스를 지을 땐 철거한 전통 가옥에서 나온 기와 200만 장을 신축 대학 건물의 지붕을 덮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폐 기와로 덮은 지붕 철거한 전통 가옥에서 나온 기와 200만 장으로 지붕을 덮은 ‘중국예술학교 샹산 캠퍼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계 건축계의 수퍼스타가 아니라 지역성(locality)에 기반해 성실하게 작업한 건축가가 수상한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프리츠커 재단이 건축 시장에 있어 '중국'의 경제적 위상을 염두에 뒀다는 인상이 든다"고 했다. 임형남 가온건축 소장은 "무조건 해외 건축을 모방하기보다 그 나라 고유의 건축 정체성을 만드는 게 중요함을 보여주는 수상이라는 점에서 국내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