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백만장자 중 60%가 미국·캐나다 등 해외로 이민을 떠났거나 이민을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3일 보도했다. 중국은행이 중국 부호 조사기관 후룬연구소와 함께 베이징(北京) 등 18개 대도시에 사는 자산 규모 1000만위안(약 18억원) 이상 중국인 98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후룬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자산이 1000만위안 이상인 사람은 96만명에 달한다.

중국 부호들이 고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은 중국에서 누리기 어려운 '삶의 질'을 찾기 위해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부를 쌓은 이들이 깨끗한 공기, 안전한 먹을거리, 좋은 교육환경, 선진 의료 시스템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소설가 스캉(石康·43)은 고급 아파트와 벤츠 승용차를 갖고 있다. 스캉이 쓴 15편의 소설 중에는 방송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이 있을 만큼 그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그는 1년 전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미국 이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게 이민을 결정한 이유였다.

중국은행과 후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중국 부호가 이민을 계획한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 때문이다. 항공우주 기술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수빈(46)씨는 올 초 아내와 아들을 캐나다 밴쿠버로 보냈고 자신도 곧 출국할 예정이다. 그가 이민을 결심한 것은 중국 공립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공산당 소년선봉대 소속임을 상징하는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귀가해서 혁명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국제화 시대에 학교에서 뭘 배울 것인가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상황이 급변해 재산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중국의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점도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주요 이유다. 화학제품 업체 사장인 덩제(48)씨는 "부패한 공무원, 노동법 강화로 인한 인건비 상승으로 회사 운영이 쉽지 않아 올해 캐나다로 이민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유층의 해외 이민 열풍에 대해 중국 정부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삶의 질과 교육 수준 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도 딸을 미 하버드대학에 유학 보낸 상황에서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 부유층은 많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중국 부유층이 가장 이민가고 싶어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어 캐나다·싱가포르·유럽 순이다. 지난해 중국인의 미국 투자이민 신청 건수는 2969건으로 2007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중국인의 캐나다 투자이민 신청건수는 지난해 2567건으로 2009년의 7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한편 부유층의 해외 이민에 대해 중국 내에서는 "돈만 벌고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다" "국부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적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환추왕(環球網) 등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중국 매체에서는 "이민을 가면 결국 돈만 잃게 된다"는 기사도 눈에 많이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