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 상승했던 엔화 가치가 최근 들어 마침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대규모 자산 매입을 발표하면서 엔화를 매입하려는 투자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전날보다 0.59엔(0.74%) 오른 80.25엔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 하락) 7일 연속으로 이어진 내림세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이달 들어 단 3일을 제외하고 연일 하락했다.
엔화 가치가 이처럼 떨어지면서 그동안 통화가치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의 수출이 살아나 경기가 점차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는데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고 보고 있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는 데다 재정 악화로 인해 정부가 쉽사리 경기 부양에 나서기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 엔화가 떨어지니 유가가 급등… 수출경기 회복에 어려움
일본의 경기회복에 당장 심각한 악재(惡材)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유가 급등이다. 최근 이란과 서방 세계의 갈등이 고조돼 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 경제의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발생한 동북부 대지진으로 인해 주요 원자력 발전시설이 파괴되면서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화력발전용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크게 늘렸다. 25일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원유 수입은 전년대비 21.3% 증가했고, 화력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은 37.5% 증가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이란 갈등의 여파로 원유와 LNG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일본의 에너지 관련 비용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엔화 가치가 내리면서 에너지 수입 가격은 더욱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화가치 하락이 오히려 경기회복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수출 뿐만이 아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가계의 전력비용 부담 역시 커지면서 일본의 내수 경기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재정 상황 악화로 법인세 인하 등 부양 노력도 지지부진
재정 상황 악화로 인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민이다.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수 십년간 이어진 방만한 재정 운영과 대지진 피해 복구 등으로 인해 일본의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올해 218%를 기록한 후 내년에는 23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그리스(159%)나 이탈리아(128%)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올해 전망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재정이 악화되면서 일본 정부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 경기를 살리겠다는 당초의 목표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은 기업들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현행 40.69%에서 35.64%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세수(稅收) 감소와 지진피해 복구 비용 마련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이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 주요 수출시장에서는 한국 등 경쟁국에 밀려 고전
최근 들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주요 수출상품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점도 숙제다. 한국이나 중국 등 주요 경쟁국들의 제품 경쟁력이 상승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 일본 제품들의 판매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주 발간호에서 그동안 해외 가전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가전제품들이 최근 한국의 삼성, 미국 애플 등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소니·파나소닉·후지쓰·샤프·NEC 등 일본의 주요 가전 5개사들의 이익 합계는 2000억달러에 근접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500억달러 안팎으로 급감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은 삼성전자 한 개 회사가 거둔 이익만 150억달러에 이르렀고, 미국의 애플은 220억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일본 가전기업들의 수익이 줄어든 데는 엔화 가치 상승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스마트폰이나 LCD TV 등에서 기술 개발과 변화를 소홀히 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