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오프앤프리 확장예술제 조직위원장)

모 대학 영화과의 김 선생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생들과 항상 같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출 전공 제자가 게으름을 피우며 숙제를 해오지 않자 김 선생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제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못하겠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제자는 고집을 피웠다. 이후 김 선생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저 제자 옆에 있기만 했다.

제자의 졸업작품 시사(試寫)가 있었다. 선생은 제자의 작품이 관객의 박수를 받는 것을 지켜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은 제자가 불성실했던 게 아니라 나름대로 고민하느라 숙제를 지연시켰음을 알아챘다. 선생은 제자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선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제자 역시 선생이 잔소리하거나 묵묵히 옆에 있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김 선생과 달리 이 선생은 이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일이 학생들과 시간을 같이할 수 없었다. 그는 학생들과 시간을 같이하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의 작품평을 학과 게시판에 올려주었다. 학생들은 모든 작품을 빼놓지 않고 일일이 평해준 선생님에 대해 감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내서 학생들 작품을 모두 다 봤다는 그 성의에 감동한 것이다. 남을 알아준다는 건 사랑의 시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본다. 철없던 시절 말도 듣지 않고 반항하며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도 항상 옆에 계시던 어머니. 스승과 제자의 사랑도 그와 같다. 어머니나 스승의 잔소리는 강압이 아니다. 강압이란 같이 있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을 말하고 사랑이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