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중국대사관 앞 큰길 건너편에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눈물범벅이 된 채 중국대사관을 향해 목청껏 "우리 친구들을 살려 달라"고 외쳤다. 중국 공안이 체포해 붙잡고 있는 탈북자들을 북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호소였다.
탈북자들은 얼굴과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린다. 북한 공안기관이 한국 언론을 뒤져 사소한 실마리라도 추적해 탈북자 신원을 알아낸 뒤 북에 남은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 처지의 탈북 청소년들이 중국대사관 앞에 진을 친 기자 100여명 앞에 나선 것 자체가 매우 드물고 위험스러운 일이다. 흰 마스크로 얼굴 일부를 가린 탈북 청소년이 "죽기를 각오하고 나왔다"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닐 것이다.
2007년 탈북자 5명은 "정부가 우리의 신원이 추적당할 수 있는 정보를 언론에 알리는 바람에 가족 26명의 연락이 끊겨 생사조차 알 수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서울고법은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1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청소년들이 북의 가족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대사관 앞에 선 것은 탈북자가 송환되면 가족까지 어떤 모진 일을 당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꼭 나 같고 내 친구들 같아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는 청소년들의 말이 절실히 와 닿는다.
탈북 청소년들의 중국대사관 앞 집회와 기자회견엔 영화배우 차인표씨를 비롯한 연예인 20여명이 함께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공개 장소에 나선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심인지 알기에 힘이 돼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차씨는 "탈북자들을 구하는 것은 정치나 외교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기본적인 양심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21일에도 탈북자들을 가리켜 "경제 문제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온 불법 월경자(越境者)"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거론하겠다는 움직임에 대해 "월경자는 난민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 체제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은 언제까지 탈북 청소년들의 한 맺힌 호소까지 못 들은 척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