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액션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한 이용자가 랜덤 박스 아이템인‘봉인된 자물쇠’를 열어보고 있다.

게임업체가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랜덤 박스(random box)' 방식의 게임 아이템이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의 도박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랜덤 박스란 무작위 쇼핑의 개념으로 소비자가 일정 금액의 꾸러미를 선택해 돈을 지불하면 어떤 내용물이 들어 있는지 모르고 상품을 받는 '복불복' 상거래를 말한다. 금액보다 가치가 낮은 상품일 수도 있고, 높은 상품일 수도 있다.

게임업체는 게임에서 사용하는 가상 도구인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고 있는데, 사용자의 도박 심리를 자극해 매출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랜덤 박스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게임업체가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에서도 이 방식을 활용한다.

서울 광진구의 초등학교 6학년 최모(12)군은 지난달 게임업체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하면서 랜덤 박스 아이템을 사기 위해 67만원을 사용했다. 이모의 신용카드로 몰래 결제했다. 게임 아이템은 온라인상에서 신용카드 외에도 문화상품권, 휴대전화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지난달 27일 아들을 데리고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최군에게 게임 중독 진단을 내렸다.

게임마다 랜덤 박스 아이템의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도박 심리를 자극하는 방식은 같다.

예를 들어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게임엔 봉인된 자물쇠라는 랜덤 박스 아이템이 있다. 이를 열어보려면 50원짜리 열쇠를 사야 한다. 같은 회사의 '마비노기' 게임에선 고대유물 지도를 사서 아이템을 찾는다. 이렇게 산 꾸러미를 열어보면, 대개 '더스틴 갑옷' '석궁'과 같은 평범한 아이템만 나온다. '드래곤의 장비'와 같은 희귀 아이템은 매우 드물게 나온다.

이런 희귀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비싸게 재거래된다. 메이플스토리의 희귀 아이템은 개당 1만원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900원짜리 랜덤 박스를 5개 사더라도 이 아이템을 얻는 경우가 드물다. 승률이 현저하게 낮은 셈이다. 그럼에도 이 박스를 사는 것에 대해, 최군은 "어떤 게 나올지 모르는 특유의 긴장감 때문"라고 말했다.

랜덤 박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실제 세계의 일탈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강동구의 중학교 3학년 이모(15)군은 "'마비노기' 게임을 하면서 랜덤 박스를 사들이기 위해 작년 3월부터 4개월 동안 초등학교 후배들에게 30만원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김교헌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아직 뇌의 성장이 마무리되지 않아 도박적 요소가 많은 제품에서 성인보다 더 큰 자극을 받고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번 도박 심리에 빠지면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는 얘기다. 게임업체도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게임업체의 한 관계자는 "다음에 더 좋은 게 나올 것이라는 청소년들의 기대 심리가 게임업체의 수익을 늘려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랜덤박스 아이템

게임에서 여러 아이템을 무작위로 묶어서 파는 방식이다. 보통 흔한 아이템이 나오지만 운이 좋으면 비싸게 팔 수 있는 아이템을 뽑을 수도 있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는 이를 구매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문화상품권·휴대전화결제·신용카드 등으로 일정한 돈을 내면 박스를 풀어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