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은행들의 자금난 해소를 목적으로 3년만기 장기대출 규모를 늘리는데 대해 독일이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는 재정 위험을 겪고 있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아일랜드·포르투갈·오스트리아·키프로스 등 7개국 중앙은행들이 3년만기 장기대출을 할 때 은행으로부터 받아야 할 담보 요건을 더욱 완화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오는 29일 실시되는 2차 장기대출에서 더 많은 은행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ECB의 장기대출 확대가 유럽 금융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 獨 "저금리로 자금 조달한 은행들, 다시 위험자산 투자 나서"

ECB의 장기대출에 대한 독일의 쓴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달 초에도 바이트만 총재는 ECB의 장기대출 요건이 너무 관대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FT에 따르면 지난 1일 바이트만 총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강연에서 "ECB의 관대한 장기대출 요건은 유럽 은행들에게 다시 위험투자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유럽 은행들이 부실한 담보요건에도 불구하고 1%의 저금리로 자금을 계속 조달하게 되면서 다시 고수익을 노리고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위험국들이 잇따라 국채 발행에 성공하고 있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탈리아가 발행한 국채 182일물 낙찰금리는 1.969%를 기록해 전달의 3.251%보다 크게 하락했다. 국채 입찰에 나선 투자자들이 늘면서 낙찰금리가 떨어진 것이다. 이달 들어 국채 입찰을 실시한 프랑스와 스페인도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낮은 금리에 목표로 했던 수량을 모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낙찰금리가 하락하면서 이미 발행된 국채의 금리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달 11월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국채금리가 위험수준인 7%를 훌쩍 넘어섰지만 현재는 5% 중반까지 떨어졌다.

FT는 이처럼 유럽 재정위험국들의 국채 금리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은 자금조달에 숨통을 튼 은행들이 높은 수익을 위해 이들 국가들의 국채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은행들이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고위험 회사채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 담보요건 완화로 대출부실 우려 심화… 인플레이션 불안감도 제기

독일은 ECB가 낮은 담보 요건으로 장기대출을 실시해 대출부실 우려가 커진 점도 경고하고 있다. ECB로부터 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향후 경영사정이 악화되거나 도산할 경우 빌려준 돈을 그대로 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CB는 이미 지난해 12월 1차 장기대출을 실시하면서 담보로 자산담보부 증권을 추가하도록 허용하는 등 대출 요건을 완화한 바 있다. 게다가 이달 실시되는 2차 장기대출에서는 7개 재정위험국들에 한해 담보 요건 기준을 더욱 낮출 수 있도록 허용했다.

FT는 이번 조치로 재정위험국 중앙은행들이 2차 장기대출에서 더 많은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중앙은행 관계자는 "담보 최소 기준이 되는 은행채 등급이 'BBB-'에서 'BB-'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했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도 독일이 ECB의 장기대출 조치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 바이트만 총재는 지난 1일 "ECB의 2차 장기대출 실시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CB 측은 아직까지 인플레이션 문제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ECB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앙 누아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6일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달 2차 장기대출에서 대규모 자금이 또 금융시장으로 들어올 경우 물가가 현재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 여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2차 장기대출에서 은행들이 요청할 자금 규모가 1차의 4890억유로보다 두 배 이상 늘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이란 제재로 인해 브렌트유 가격이 급등하는 등 국제유가가 계속 오름세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