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의 쇠퇴' 시기에 (미국이 아닌) 새로운 '핵우산'을 찾거나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거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84)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쇠락에 따른 세계 '핵 판도' 변화와 관련해 새로운 진단을 내놨다. 이번 주 발간한 새 저서 '전략적 비전(Strategic Vision): 미국, 그리고 글로벌 파워의 위기'에서다.

'포스트 미국 패권시대'에 대한 전망을 담은 이 책에서 브레진스키는 또 "미국의 패권은 중국 한 나라에 넘어가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돼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다른 곳'에서 안보 찾아야

브레진스키는 "한국·대만·일본·터키 등은 미국의 확장된 핵 억지력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만, 미국의 쇠퇴는 곧 미국이 제공하던 핵우산에 대한 신뢰성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내부 문제로 인해 특정 지역에서 서서히 발을 빼거나, 이들 국가가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확신을 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곳(elsewhere)'에서 안보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다른 곳'에 대해 "스스로 핵무기를 갖는 길과 중국·러시아 등 다른 핵파워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길, 두 가지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끊임없이 핵무기를 추구하는 북한의 호전성, 6자회담 실패 등을 감안하면 '쇠락하는 미국'은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핵 경쟁에 나서는 것을 저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선택의 기로에

브레진스키는 한반도 통일의 시기가 왔을 때 한국이 중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안보동맹 수준을 일정 부분 낮추는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쯤 중국의 파워는 지금보다 훨씬 커져 있을 것이고, 남·북 통일에서도 중국의 역할은 핵심적일 것"이라며 "한국은 '중국의 지원을 받는 통일'과 '한·미동맹 축소'를 '주고받기(trade-off)'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의 쇠퇴로 인해 '지정학적 위험'에 처할 8개국으로 한국을 조지아(러시아 명 그루지야)·대만에 이어 세번째로 꼽으며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지역적 우위를 받아들이고 핵무장을 한 북한에 대한 고삐를 잡기 위해 중국에 더 의존하거나, 아니면 평양과 베이징의 침략에 대한 우려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역사적 반감을 무릅쓰고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관식' 가능성 작아

브레진스키는 역사상 유일한 '수퍼파워'였던 미국이 왕좌에서 내려온 뒤, 중국 등 특정 국가 하나가 이를 물려받아 '대관식'을 할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2025년이 돼도 과거 소련이 붕괴한 뒤 미국에 맡겨진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지역·글로벌 파워들 간에 다소 혼란스러운 힘의 재분배 과정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며 "이 과정에서 승자보다는 패자가 훨씬 많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