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 가치를 산정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재인데, 피고인은 이 고서를 낱장으로 분리해 은닉한 채 그 행방을 함구하고 있다.… 피고인을 징역 10년에 처한다."
9일 오전 10시 대구지법 상주지원 1호 법정. 김기현(지원장) 재판장이 선고를 내리자 40여명이 꽉 들어찬 방청석에선 '아~' 하고 탄식이 쏟아졌다. 재판 내내 피고인 배모(49·경북 상주시·무직)씨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값어치가 1조원으로 여겨지던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도 배씨는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 감옥살이를 선택한 것이다.
이 해례본은 1999년 문화재 절도범인 서모(51)씨가 경북 안동시 광흥사에서 훔쳐 조모(67·골동품상)씨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배씨가 2008년 7월 조씨의 골동품 가게에서 다른 고서적을 사면서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배씨는 해례본에 대해 "2008년 집을 수리하면서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씨와 서씨를 위증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문화재 절취죄의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고형을 구형하면 배씨가 입을 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번 재판은 해례본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 정확한 가치를 판단해 보존할 수 있고, 배씨의 혐의도 입증해 죄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씨 측은 "이미 도둑으로 몰렸는데 지금 해례본을 내놓으면 책도 뺏기고, 벌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옥살이를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을 다물고 10년형을 받겠다고 나섰고, 재판부와 검찰은 "실체(해례본)도 없이 말로만 진행한 재판이 된 것 같아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지원장은 "실제 책을 봐야 복장유물의 특징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배씨가 내놓지 않으니 증언과 정황 증거만으로 판결해야 했다"며 "항소심이 열릴 때 배씨가 책을 들고 나와 정확한 검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