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법원의 재판이 국민들 사이에 뜨거운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벌금형 선고와 이로 인한 직무 집행 재개 논란, 그리고 영화화된 소위 '석궁 사건'에 대한 진위 공방 논쟁이 그것이다. 분쟁 해결을 임무로 하는 법원이 오히려 분쟁을 야기하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 판결들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어찌하여 사법부의 재판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당하는 형국이 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그럴진대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신뢰 획득 실패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표피적이면서 감성적인 원인은 최근 법관들 스스로 품위를 손상한 데 있다. 일부이지만 재판 주체인 법관들이 점잖음과 품위가 결여된 막말과 비속어를 쏟아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있다. 가는 말이 곱지 않았는데 오는 말이 고울 수 없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둘째로, 원천적이면서 역사적인 원인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사법부가 지은 원죄(原罪)에 있다. 최근 과거의 국가보안법이나 긴급조치 위반에 대한 재심(再審)과 무죄 및 위헌 판결 등을 통하여 사법부의 원죄 극복 노력이 행해지고 있으나, '솔직한 잘못 인정'과 '통렬한 자기반성'이 없이는, 그 정도 노력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예를 들어, 2010년 12월 대법원은 유신헌법 시절에 내려진 긴급조치는 헌법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위헌의 논리적 근거, 특히 과거에 있었던 상반된 판결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반성은 없이, 오히려 판결문 대부분을 헌법재판소와 권한을 다투는 데 소비해 버린 것은 국민 입장에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그 시대의 특수성[當代性]'을 주장하여 합헌(合憲)을 고집하거나, 아니면 철저한 자기반성을 수반하는 위헌(違憲)을 선언하거나, 양자 중의 택일이 바람직하였다.
셋째로, 현실적이면서 실제적인 원인은 지혜 부족에 따른 재판 역량 미숙에 있다. 먼저 곽 교육감 사건에서, 재판부는 금전 수수의 발단이 곽 교육감 측 주도로 이루어진 후보자 '매수'가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로 이루어진 후보자 '매도'였기 때문에 주는 자보다 받는 자를 더욱 엄하게 벌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좀 더 사려 깊은 법관이었다면 피고인이 석방됨으로써 곧바로 직무 집행을 재개할 수 있고, 그 결과 학생인권조례 등 중요 사안에 대한 커다란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는 점 역시 고려하였어야 했다. 석궁 사건은 지혜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하였다. 현직 법관에 대한 테러라는 사건의 특성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에 가득 찬 피고인의 특성 등을 감안했다면, 재판 절차에서 공정성의 외관을 확보하는 데에 더욱 유념했어야 했다. '논리적인 설득'을 넘어 '감성적인 승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세심한 절차 진행이 아쉬웠던 점이다.
그러면 문제 극복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법관의 개인적인 인격 도야와 어두운 과거사 탈출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법관의 지혜로운 재판 역량 강화는 당면한 과제이다. 그 해결 방안의 핵심은 머리로 하는 재판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재판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가슴과 뜨거운 머리'에서 나오는 재판은 법관 자신을 위한 것일 뿐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재판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다"란 말이 있듯이 판결로 대중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일시적인 이성'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성'의 문을 두드려야만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법조 일원화를 통한 경륜 있는 법관 임용이 절실하고, 실무적으로는 법관들 사이에서 재판 진행 기술에 관한 상세한 실무 요령을 만들어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 특별한 경우에는 배심원을 재판에 참여시키거나 재판의 전 과정을 중계방송함으로써 법관에 대한 불신 소지를 원천 봉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 설득의 방법으로 논리를 동원할 경우 논리가 불완전하면 반박할 것이고, 논리가 완벽하면 "그래, 너 잘났다. 그런데 왠지 나는 네가 싫다" 하고 반발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똑똑한 재판이 아니라, 지혜로운 재판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