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정부가 국내 항공업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제2민항사로 금호그룹을 전격 발표한 것은 1988년 2월 12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하기 13일 전이었고, 실제로 인가를 내준 것은 퇴임 하루 전이었다. 금호그룹은 당시 재계 20위권이었지만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는 시비가 뒤따랐다. 특히 전 대통령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의식해 호남을 근거지로 커온 금호그룹에 특혜를 준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때까지 19년 동안 항공운송을 독점해온 대한항공은 독재정권 시절이라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우려했던 일"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시기상조다" "금호가 과연 해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그전까지 제2민항(民航)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국적(國籍)항공사는 하나로 충분하다"며 항공사업의 전문성과 안전성 등을 들어 제2민항 허가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해 12월 23일 마침내 아시아나항공의 광주행 737-400기가 서울 김포공항을 이륙하면서 우리나라도 복수 민항 시대가 열렸다. 이후 두 기업은 조종사 스카우트, 노선 배분 등을 놓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나란히 세계적인 규모와 노선망을 갖춘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적극적으로 신형 기종을 도입하고 공항 외투 보관, 기내 금연 등 참신한 서비스를 제공하자 대한항공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항공사가 서로 견제하면서 기내식, 공항서비스, 항공요금 등 항공 서비스의 질도 높아졌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매출이 12조원에 육박해 1988년보다 8배 늘었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세계 항공수송 통계'에서 화물 부문은 세계 2위, 여객 부문은 13위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도 화물 수송은 14위, 여객 부문은 세계 27위를 기록했다.

새로운 민간 고속철도(KTX) 회사를 만들어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해 온 정부는 코레일 등이 반발하자 당초 일정을 늦추어 4월 총선이 끝난 후에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정부와 코레일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가 열렸지만 양쪽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채 열차길처럼 평행선만 달렸다.

지난 113년 동안 철도를 독점해온 코레일의 운영과 조직이 심각하게 비효율적이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코레일은 연평균 수천억원 적자를 내고, 수시로 크고 작은 사고와 고장을 일으키고, 역주행까지 해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코레일도 "독점의 폐해를 개선하자는 취지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도 경쟁 체제는 과거 대한항공이 그랬듯, 코레일에도 비효율을 깨고 경쟁력 있는 업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KTX 기장과 기술직 등 내부 종사자에게는 몸값 상승 등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코레일과 철도노조가 "민간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 "적자는 일반·화물열차에서 발생하는데, 왜 흑자가 나는 KTX만 개방하려고 하느냐"고 반대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정부도 막연하게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명확한 근거와 사례를 제시하면서 코레일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