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은행들에 1%의 저금리로 제공한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이 채권시장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ECB의 장기 대출 이후 채권금리 안정

ECB는 지난 12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은행들에 대한 장기 대출 만기를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대출금도 무제한 제공한다고 밝혔다. 대출에 따른 담보 요건도 완화했다.

ECB가 장기 대출 프로그램을 발표한 당시에는 ECB에 손을 벌리는 은행도 많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에 대한 은행들의 의존도만 높이는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막상 ECB가 장기 대출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들이 ECB로부터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채권 금리가 높은 재정불량국의 국채를 사들이면서 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 11월말 7.8%까지 치솟았던 이탈리아 국채 금리(2년물)은 24일(현지시각) 3.9%로 떨어졌다. 스페인 국채 금리(2년물)도 지난달 6.2%까지 상승했지만 3.3%로 내려온 상태다.

채권 전문가들은 ECB의 대출 프로그램이 유로존 은행들에 자금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줬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채권시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12월 한 달 동안 ECB는 523개 은행에 4890억유로의 대출금을 제공했고, 이 가운데 1900억 유로가 자금시장에 새로 공급됐다. ECB는 다음달에 또다시 3년 만기 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 ECB로부터 빌린 돈으로…재정불량국 국채 사들여

유럽 은행들은 ECB로부터 값싸게 빌려간 자금으로 재정불량국의 국채를 사들이는 '캐리 트레이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간스탠리가 유럽의 50여개의 은행들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은행이 ECB로부터 저금리의 자금을 빌려 재정불량국의 국채들 사들였다.

모간스탠리는 스페인 은행들이 올해 150~450억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빌려 자국 국채를 매입, 올해 스페인이 발행할 국채 물량의 절반까지 흡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ECB로부터 장기 대출을 가장 많이 받아간 곳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은행권으로 추정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모간스탠리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이 지난달 ECB로부터 장기대출을 받아 올해 필요한 자금 중 50~150%까지 미리 확보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이탈리아 은행권은 4890억유로 가운데 3분의 1에 달하는 자금을 빌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불량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북유럽 은행들도 1분기에 필요한 자금를 충당하기 위해 ECB의 장기 대출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FT에 따르면 ECB로부터 직접 대출을 받지 못하는 영국 은행들도 ECB의 장기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인 혜택을 입었다.

모간스탠리의 애널리스트들은 다음 달에 있을 장기 대출에서도 유럽 은행들이 4000억유로 이상의 자금을 빌려갈 것으로 추정했다. FT는 이와 같이 유럽 은행들이 ECB의 장기 대출 자금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업들에도 유동성을 공급해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그리스의 제 2차 구제금융 협상이 진척되지 않으면 유로존 채권시장이 언제든지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