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재하씨

다가구·다세대주택에서 건축적 완성도는 늘 뒷전이었다. 싸게 빨리 짓고, 정해진 땅 안에서 최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통계청의 2010년 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가구·다세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58%), 일반 단독주택(19%)에 이어 한국에서 3번째로 많은 주택 유형이지만 대부분의 다가구·다세대주택은 비슷비슷하게 무미건조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건축가 이재하(이재하건축사사무소 대표·42)씨가 경기 성남시에 설계한 다가구주택인 '백현동 점포주택'은 이런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가구·다세대주택은 꼭 무표정한 얼굴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언뜻 봐서는 고급 주택 같은 독특한 외관으로, 인근의 고만고만한 다가구주택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충남 태안군에 건립한 '마로니에 펜션'으로 2009년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건축상을 수상한 이씨는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등 주거 프로젝트를 주로 맡아온 건축가다. 최근 성남시 백현동 현장에서 만난 이씨는 "다가구·다세대주택도 공사비용, 기간 등 통상적인 건축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충분히 완성도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다가구·다세대주택의 통상적 건축 조건이 "평당 공사비 350만원선, 시공기간 4개월 정도"라고 했다.

이재하씨가 성남시 백현동에 설계한 다가구주택. 2∼3층 외관을 목재로 마감했다. 창문에는 외부로 돌출된 알루미늄 처마를 달아 눈이나 비가 와도 창을 열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표준화된 설계로 시공까지 하는 소위 '집장수'들이 보통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한다. 아름다움이나 완성도보다는 싸게 빨리 짓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백현동 점포주택은 약 400만원의 평당 공사비를 들였고, 공사는 5∼6개월쯤 걸렸다"며 "통상적 수준의 공사비에서 10∼15%만 더 투자하면 건물이 훨씬 좋아진다"고 했다.

이 건물은 흔한 다세대·다가구주택과는 차별화되는 점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일단 건물 2∼3층 외장재로 목재를 썼다. 이씨는 "한증막 벤치를 만드는 나무와 비슷한 '적삼목'"이라며 "습기에 강하고 벌레가 잘 먹지 않아 외장재로도 좋다"고 했다. "2∼3년에 한 번씩 오일스테인(목재 보호용 도료)을 발라 주면 목재의 따뜻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어요. 기존 다세대·다가구주택은 보통 관리가 별로 필요없는 화강석을 외장재로 많이 써서 차가운 느낌의 건물이 많지요."

3층으로 지어진 주택은 1층 점포, 2층 임대, 3층 주인집으로 구성된다. 2∼3층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 외벽은 반원형 곡선으로 마무리했다. 이씨는 "건물 윤곽선의 일정 부분은 도로와 접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설계 전 건물 형태가 어느 정도는 결정됐다"며 "나머지 부분을 활용해 디자인의 포인트를 준 것"이라고 했다. 1층 일부는 필로티(기둥 위에 건축물을 올리는 방법)로 비워 주차장으로 활용한다.

‘백현동 점포주택’3층 내부의 계단을 오르면 옥상으로 나가는 문으로 이어진다. 계단 옆에는 다락방을 만들어 미니 복층으로 설계했다.

주택 내부에도 신경을 썼다. 벽을 칠하기 전에 접합제의 일종인 퍼티를 바르고 표면을 고르는 작업을 거쳤다. 그다음 흰색 래커를 칠했다. "표면을 깨끗하게 다듬어서 더 깔끔하고 균일한 흰색이 나오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3층 주인집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거실에 뒀다. 이씨는 "계단이 실내에 있으면 옥상으로 다니기가 편해진다. 계단이 장식물처럼 실내 공간에 변화를 주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계단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3층은 작은 다락방이 있는 복층 구조가 됐다.

"공사비를 조금 더 투자하면 그만한 부가가치가 따라온다"는 게 이씨의 지론이다. "건물주들은 1층 점포에 체인 커피전문점처럼 세련된 가게가 들어오기를 바라죠. 독특하고 멋진 건물로 입소문이 나면 그런 인기 업종을 유치하는 데 유리해요. 세입자들도 선호하죠."

이씨는 "다가구·다세대주택에서 건축가가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고 했다. "욕심을 너무 부리다 보면 건폐율, 용적률 같은 현실적 조건을 무시하기 쉽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한두 가지의 남다른 착상으로도 개성 있는 건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건물들이 늘어나면 도시 주거 환경도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