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키포인트는
이념보다 몇사람 나오느냐가 핵심, 정책 아닌 구도 싸움 될 거다
총선서 몰아준 정당에 만족 못하면 대선땐 응징심리 되살아날 수도…

모바일투표로 후보 공천?
당원 없는 정당이 무슨 정당이냐, 아무나 등록하는 SNS로 무슨…
이거야말로 진짜 여론 왜곡이다… 요즘 정치판, 나도 잘 이해 안돼

여론조사, 예전같지 않네
스마트폰·1人 가구 증가표본 잡기가 훨씬 힘들어져…
그래도 당선 예측조사 등 필요하다 부정선거 같은 잡음 없게 하니까…

현재 그의 공식직함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이지만 20년 친분의 그를 여전히 '소장'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하다.

박무익(朴武益·69) 소장을 만나봐야겠다 생각을 한 것은 지난 연말이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전망은 궁금한데 점쟁이를 찾지 않을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여론조사의 대부'인 그를 만나보고 싶지 않을까 해서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거 직후인 17일 오후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사직동 갤럽 사옥 7층 회장실에서 만난 박 소장의 첫마디는 "야당 지도자들 입에서 복수하겠다, 원수를 갚겠다가 뭐야, 그 지독한 군사정권에 맞섰던 양김씨 입에서 그런 소리 나오는 것 봤어?"였다.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그도 이제 70을 바라봐서인지, 박 소장은 인터뷰 중에도 '나라걱정' 섞인 이야기를 툭툭 던지곤 했다.

◇"예측조사 덕분에 우리 사회가 선거결과에 '쿨'하게 됐다"

―여론조사, 특히 정치분야 여론조사에 대해 말들이 많다. 정확도도 예전 같지 않고.

"스마트폰 등장과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인해 여론조사 표본 잡기가 과거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게다가 여론조사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응답자들이 거의 응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나마 이름이 있어 전화 100통하면 20통 정도 성공하는데 다른 곳은 대여섯 통 하기도 힘들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박무익 회장은 연말 대선전망에 대해 묻자 사옥 옥상에서 청와대 쪽을 가리키며 “저렇게 뿌연데 난들 어찌 알겠어”라며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이미 들어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갤럽도 2010년 서울시장 당선예상 여론조사 때 크게 틀려 망신을 당했는데.

"10% 정도 틀렸다. 생활패턴의 변화를 감안하지 못하고 조사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새롭게 도입한 무선전화 RDD방식으로 조사해 출구조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읽지 못한 업보였다고 할까."

―그래도 대통령 선거 당선자 예측조사의 선구자 아닌가?

"1997년 12월 18일 저녁 6시 내가 방송국에 직접 출현해 예측결과를 발표했다. 2% 이내에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지. 그런데 개표 초반 이회창 후보가 10% 이상 앞서나가는 거야. 원래 MBC 이득렬 사장은 방송 3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으려 했는데 MBC 선거기획단에서 강력하게 주장해 결국 MBC만 발표하게 된 거야. 관계자들 얼굴이 하얘지더군. 그러나 10시를 넘기면서 김대중 후보가 앞서기 시작했고 결국 실제 결과와 비교할 때 당선자는 0.4%, 이회창 후보는 0.2% 차이가 났지 아마."

―요즘은 개표방송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아주 박빙일 때가 아니면 출구조사나 예측조사가 나와버리면 사실상 선거는 끝인 것 같다.

"그게 중요한데. 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게 있다면 바로 그 점이지. 87년 대통령 선거를 돌이켜보자. 곳곳에서 모의투표가 횡행했고 식당마다 누가 이긴다 진다며 난리통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사를 보면 노태우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어. 그래서 저녁 6시에 투표가 끝나자마자 '노태우 당선'이라는 예측조사 결과를 국내외 언론에 발표한 적이 있지."

-그랬나요?

"기억 못 하겠지. 이를 가장 먼저 보도한 매체는 일본 NHK 저녁 7시 뉴스였고 국내에서는 KBS의 박성범 앵커만 '이런 데이터도 있습니다'라며 잠깐 언급한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때? 예측조사가 자리 잡으면서 부정선거 논란도 사라졌고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도 '쿨'하게 바뀌었지. 선거 민주주의도 정착됐고."

◇"요즘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정당에서 지도부를 선출할 때 당원과 여론조사로 하더니 이제는 여론조사 대신 모바일투표로 대체하는 흐름이다.

"애당초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데 대해 나는 반대였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정치행위가 돼서는 안 된다. 그 극단적인 예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몽준의 후보단일화였다. 당시 정몽준측 관계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1%라도 더 나온 사람으로 단일화하기로 했으니 제발 갤럽에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는 최소 3% 정도의 오차범위가 있다. 따라서 조사윤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런데 그 후로 여론조사가 오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론조사로 공천자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풍토가 됐다."

―일단 이겨야 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정당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제시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여당도 하고 야당도 하면서 성장해가야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되는 풍조가 만연되면서 여론조사도 함께 오염돼 버렸다. 이런 부끄러운 행태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는 여야 할 것 없이 당원과 일반시민 모바일투표로 총선 후보를 낼 것 같은데.

"그게 정당정치의 기본을 흔드는 것 아닌가? 정당이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당원을 충원해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려고 해야지 당원도 없는 정당을 기정사실화하고서 아무나 등록할 수 있는 SNS 운운하면서 새로운 정치인 양 돼버렸다. 이야말로 진짜 여론의 왜곡이다. 당원 없는 정당이 무슨 정당인가? 당원도 아닌 사람들이 당의 가장 중요한 선거를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정당도 아니고. 그런데 여야 모두 그렇게 하겠다니. 요즘은 나도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시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한국갤럽 조사원들.

―어쨌거나 그게 시대조류 아닌가?

"시대조류라? 좀 오래된 일이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1988년에 MBC가 연말에 뽑는 '10대 가수'를 처음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했다. 그 전해까지는 시청자 엽서에 따라 선정했는데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가수들만 상대적으로 많이 뽑혔다. 그런데 우리가 전국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가수는 '신사동 그 사람'을 부른 주현미였다. 10대에서 이선희, 20대 초반에선 김종찬이었지만 20대 후반부터는 모두 주현미가 압도적인 1위였다. 89년도에도 1위는 주현미였고 2위는 전해에 7위였던 현철이 차지했다. 그리고 91년도에는 1위 현철, 2위 주현미였다. 지방을 돌며 '봉선화 연정'을 부른 현철을 국민가수로 끌어올린 것도 이런 과학적 여론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화는 '무릎팍도사'가 만든 것 아닌가?"

안철수 돌풍이 거세다. 여론조사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어떤가?

"안철수 돌풍이란 게 강호동이 하던 방송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그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신화적 인물이 되게끔 만들었지. 그리고 지금도 아마 한 달에 10번 이상 여기저기서 재방송될 거다.

두 번째 요인은 우리 토양이 바뀌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던 '잘 살아보자'는 사라지고 '왜 저자들만 잘사나'로 바뀌었다. 한 경제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기획시리즈를 20차례에 걸쳐 했는데 이건 거의 '공산당 선언' 수준이더라. 보수언론조차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안철수는 겸손해 보이고 자기 것 나눠주고…. 이 정도 되면 거의 신(神) 아닌가? 정치 환멸과 안철수에 대한 환상이 잘 엮인 것이 신드롬을 만들고. 게다가 안철수는 자기를 잘 등장시키고 있다. 그는 이미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읽어내는 키포인트는 무엇인가?

"대선은 이념이 아니라 몇 사람이 나오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정책도 아니고 구도다."

―그래도 이슈가 중요하지 않겠나?

"복지 아닌가? 지금 통일 얘기 꺼내 봐야 그렇고, 반(反)기업 정서도 높아가고."

-서민들이 어려우니 복지가 이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글쎄. 개인적으로 걱정하는 것은 과잉복지의 위험성이다. 종종 북유럽을 언급하면서 복지사회 운운하는데 인구가 4000만 넘어가는 나라들은 과도한 복지정책이 대부분 실패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인구 1000만도 안 된다. 그런 나라들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발언은 개인 박무익의 견해인가 여론조사전문가 박 소장의 견해인가?

"그건 시민적 교양의 문제 아닌가? 나는 직원 교육할 때 조사인은 인문학적 교양과 함께 휴머니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빈부격차에 대해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에 관한 조사를 잘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한나라당도 복지경쟁에 발벗고 나서려는 것 같은데.

"그게 복지경쟁인지 복지포퓰리즘 경쟁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국내 대기업들이 쿠션 역할을 하면서 버텨주니까 견딜 만하겠지만 전면 무상급식이나 등록금 인하 정도가 아니라 '의료 복지'를 건드리는 상황까지 갈까 봐 걱정이다."

―요즘 분위기에는 총선이나 대선 모두 한나라당의 참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지금 한나라당은 자중지란으로 궤멸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바로 세우겠나? 그러나 대선은 모른다. '스윙이론'이라는 게 있다. 한쪽이 많이 가져가면 반대도 살아난다는 것이다. 총선에서 몰아준 정당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곧 이어지는 대선을 통해 응징을 하겠다는 심리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를 통해 지켜본 한국인들은 아주 똑똑하다. 결국 대선은 총선 이후 정당이나 후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나?"

'한국 최초의 여론조사인' '1%의 승부사' 박무익 소장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영대학원을 마친 후 금성사 광고 선전부에 취직했다. 광고회사가 없던 시절 그는 여기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렸고 제일기획 창립멤버로 6개월 동안 참여했다가 1974년 현재 한국갤럽의 모태가 된 국내 최초의 여론조사 회사 KSP를 세웠다. 이후 38년간 한우물만 판 장인(匠人)이자 전문가다. 인터뷰를 끝내려는데 박 소장이 한마디했다. "이 얘긴 꼭 써줘. 여론조사는 대중심리의 지도를 만드는 것(Mapping)이지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목적지는 지도를 보면서 자기가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