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써보니까 독자들의 반응도 각기 다르다. 잘 썼다고 칭찬을 해주는 격려독자(激勵讀者)도 있고, '그것도 칼럼이라고 썼냐'고 나무라는 질책독자(叱責讀者), 필자도 미처 몰랐던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는 증보독자(增補讀者)가 있다. 책도 '증보판'(增補版)이 있지 않은가? 강호를 유람하다가 우연히 '증보독자'를 만나 일 합씩을 주고받으면 칼럼 쓸 맛 난다.
베이징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증보독자를 만나게 되어 한 수 배우게 되었다. '808호살롱' 첫머리에 중국 한무제가 읊었다는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환락이 극에 이르고 나면 슬픔만 남는다)라는 시구만 한 구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독자는 이 구절이 나오게 된 장소와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당시 한무제는 산서성의 분음(汾陰)이라는 곳에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마침 그때에 골치 아팠던 남쪽지방의 정벌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보고를 받고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에서 강물에 배를 띄우고 읊은 시였다고 한다. 배를 띄웠던 '분음'이라는 지역은 어떤 곳인가? 산서성 북쪽의 관령산(管岺山·2603m)에서 시작된 분하(汾河·716km)라는 강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황하(黃河)로 합류되는 지점 근처였다. 산서성은 동쪽의 태행(太行)산맥과 서쪽의 여량(呂梁)산맥 중간 지점인 산골에 자리잡고 있어서 먹고 살기 힘든 지형이다. 일찍부터 장사가 발달하여 청나라 때는 표국(票局)의 중심역할을 담당했던 곳인데, 표국은 요즘의 우체국과 은행을 결합한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시 구절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의 유불선(儒佛仙)과 인문지리를 배경에 깔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증보독자는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외환은행 장석호(51) 지행장이었다. 은행 일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당시(唐詩), 송사(宋詞), 한부(漢賦)를 손에 쥐고 놓지 않는다. '당시'가 입에서 줄줄 나온다. 그런가 하면 두툼한 중국 지도책을 펼쳐놓고 각 지역의 지명에 얽힌 고사(故事)와 인물배출, 유적지, 산과 강의 흐름을 공부한다. 베이징의 중국인 식자층들은 장석호씨와 이러한 담론을 아주 즐기는 분위기이다. 공부는 학교 다닐 때 하는 것보다, 40세 이후부터 하는 공부가 자득지미(自得之味)를 느끼는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