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대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동반성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사회의 사랑에서 나온다.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각 계열사는 사회공헌 활동에 힘을 모아줄 것"(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중소기업과 지역사회를 배려하는 따뜻한 성장"(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 등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고, 추운 곳에 온기(溫氣)를 퍼뜨리겠다'는 발표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 인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나서는 통에 양극화 문제가 금세 해소되고, 불우이웃이 당장 크게 줄어들 것만 같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업들의 발표가 과연 지속가능한지, 또 실천의지를 담고 있는지 여부이다. 기업들의 발표를 바라보는 모금(募金) 현장의 얘기는 많이 다르다. 한 모금단체 관계자는 "요란한 소리와 달리 기업들의 불우이웃 돕기 참여는 예년보다 별반 나아진 게 없다"면서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대기업이 많았지만 정작 불우이웃을 위해 현금 보따리를 푸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고 아쉬워했다.
순수 민간기구이지만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대표적인 기부단체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작년 한 해 3600억원 정도를 거둬 전국 2만5000여 곳의 복지기관, 노인장애시설, 지역아동센터 등에 따뜻한 이웃의 정을 나눠주었다. 이 단체의 수혜자만 40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0% 가까이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이번 연말연시 이웃돕기 기부모금은 30대 대기업군(群)에서도 외면하는 곳이 10여개를 넘고, 그밖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참여 역시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기부액도 삼성과 현대차그룹, 포스코 등 몇몇 기업이 액수를 늘렸을 뿐, 대다수 기업의 경우 나아진 경영실적에도 불구하고 기부실적은 예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해 들어 기업마다 앞다퉈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 열기와는 사뭇 다른 셈이다.
기업들의 '기부 양극화' 현상도 예년과 똑같다. 즉 상위 15대 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여전히 호주머니 열기에 인색하다는 것인데, 10년·5년 전이나 기업들이 앞다퉈 공생(共生)과 약자 배려를 강조하는 올해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기부문화가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좋지 않은 징표다. 실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A그룹, B건설그룹 등 10여개 그룹은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모금에 참여한 적이 없다. 이러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기업의 배려 열기는 말뿐"이라는 모금 현장의 지적에 대한 기업의 변명은 궁색할 뿐이다.
작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불우이웃돕기 모금액(3600억원)을 400만명에게 골고루 나누면 1인당 9만원꼴이다. '나눔'의 의미는 적지 않지만 한 개인의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기업들이 불우이웃 돕기 불씨를 '통큰 기부'를 통해 활활 불타오르게 만든다면 1인당 9만원에 불과한 액수는 어느새 10만원, 15만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 도움을 줄 수 있는 규모로 커질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의 참 결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의 불우이웃 돕기는 어려울 것도 없다. 신년 벽두에 밝힌 '상생, 사회적 책임, 약자 배려' 의지를 연중 내내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올 한 해는 기업들의 통큰 배려를 곳곳에서 목격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