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게는 30년 전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인데. 그 아이들이 모아준 돈을 어떻게 제 치료비로 쓰겠습니까."
지난 2000년 서울 배명고에서 29년간 잡았던 교편을 놓고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정효근(70)씨는 지난해 4월 방광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방광을 들어내고 대체 방광을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해 6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정씨의 아파트로 중년이 된 5명의 제자가 찾아왔다.
지난 1981년 고3 담임이었던 정씨가 "너희는 성격이 비슷하니 같이 어울려 다니면 좋겠다"며 짝 지워 준 배명고 25회(1982년 졸업) 제자들이었다. 3명은 변호사, 2명은 대기업 중역과 사업가가 돼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은사의 투병 소식을 들은 이들은 "치료비에 보태시라"며 90만원씩 모은 450만원을 내밀었다. "안 받겠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아이들이 봉투를 놓고 도망치듯 가버렸어요." 정씨는 "늙은 선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아이들이 고마워서 코끝이 매웠다"고 했다.
5일 자택에서 만난 그는 야윈 손가락으로 빛바랜 졸업 앨범을 넘기며 고마운 제자들을 소개했다. "이놈은 좀 말썽도 피웠어요. 그래도 참 착했지. 여기는 우리 반 지각 대장. 이 친구는 반듯한 모범생이었고"라며 학생들을 하나씩 기억해 냈다. 30년이 지나도 스승의 기억 속엔 제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제자들이 놓고 간 봉투에는 사제(師弟) 간의 사랑과 동문들의 정(情)으로 아름다운 마법이 걸렸다. 스승을 위해 마련한 치료비 450만원이 6개월 만에 7800만원의 동문회 장학금으로 변했다.
제자들이 다녀간 날 밤 정씨는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제자들이 놓고 간 봉투를 꺼내놓고 "내가 550만원을 보태 1000만원을 만들어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은 "아버지다우신 생각"이라면서 찬성했다. 정씨의 부인은 "'인생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형편 탓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면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나보다 어린 학생들을 위해 이 돈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정씨의 장학금 기탁 소문이 퍼지자 졸업 30년을 맞은 배명고 24회가 나섰다. 졸업 30년이 되는 동기회가 학생 1명의 1년 학비인 180만원을 모교에 기탁하는 전통에 따라 진행하고 있던 모금에 불이 붙었다. 당초 계획했던 180만원의 10배인 1800만원을 모았다. 여기에다 배명고 총동문회까지 나서 5000만원을 더 보태 장학금은 7800만원이 됐다.
장학금은 '효제장학금'으로 부르기로 했다. 총동문회 측은 "선생님 성함에서 '효'를 따오고, 뜻을 모은 제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제'를 넣었다"고 말했다. 효제장학금은 내년부터 정씨의 뜻대로 매년 형편이 어려운 학생 10명에게 180만원씩 지급할 예정이다.
제자들은 선생님에 대해 "수십년이 지나도 제자 수백명 이름을 다 기억하는 평생의 스승"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말썽을 피워도 단 한 차례도 매를 든 적이 없었다고 한다. 호되게 야단친 뒤에는 꼭 "원래 젊을 땐 그럴 수 있다"며 어깨를 다독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활이 어려운 제자들에게는 남몰래 장학금을 쥐여줬다.
고3 시절 정씨가 담임을 맡은 반이었다는 한 제자는 "학원도 과외도 없던 시절, 반 학생 62명 모두를 상대로 꼼꼼하게 상담하고 수업하셨다"며 "학생들을 아들처럼 대하셨다"고 기억했다. 처음 정씨에게 치료비가 든 봉투를 건넸던 제자 5명은 "다 큰 제자들이 선생님께 너무 적은 치료비를 드린 것 같아 부끄럽다"며 실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