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1시쯤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순찰을 하던 지하철보안관 진홍기(30)·정성관(28)씨는 승강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나타나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혹시나 성추행 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이 여성이 전동차에 타자 보안관들도 같은 객차 안에 올라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켜봤다. 다행히 내부가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고, 수상한 낌새도 없어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 서울대입구역에 다다르자 이들은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주목했다. 치마 입은 여성을 상대로 휴대전화나 소형 캠코더로 치마 속을 슬쩍 찍는 범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진씨는 아래, 정씨는 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샅샅이 훑었다.
◇'추행철·치한철'로 불리는 지하철
이날은 만원(滿員)시간대가 지나서인지 별다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하철 성범죄는 꾸준히 느는 추세다. '추행철'·'치한철'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가 본격적으로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09년 지하철 성범죄 검거 건수는 671명이었으나, 이듬해 1192명으로 77% 증가했다. 2011년에는 1273명으로 상승 곡선이 꺾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경찰 추정이다.
지난해 8월 31일 오전 7시58분쯤 7호선 먹골역에서 사가정역 방면으로 가는 전동차 안에서 혼잡한 틈을 타 여성 뒤에 붙어 8분가량 몸을 밀착시키다 걸린 남성이 있었다. 지난해 7월 16일 오후 7시쯤에는 2호선 강남역 승강장에서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을 우산으로 가린 뒤 한 여성 하체를 14번에 걸쳐 동영상으로 찍다가 잡힌 남성도 있었다.
'도촬(盜撮)'로 통하는 '몰래 카메라'에는 별의별 수법이 다 동원되고 있다. 만년필이나 볼펜 끝, 우산 끝에 구멍을 뚫어 카메라를 달고, 운동화나 구두 앞부분에 구멍을 뚫고 카메라를 설치한 범죄자도 있다.
◇출퇴근시간대 2호선에 성추행 집중
2011년 사례를 시간대별로 분석하면 출퇴근 시간인 오전 8~10시(462명)와 오후 6~8시(337명) 사이에 잡힌 성추행범이 전체의 63%를 차지했다. 노선별로 2호선(583명)-1호선(359명)-4호선(135명) 순으로 빈번했다. 요일별로는 금요일(253명)과 수요일(248명)이 많았고, 주말(토요일 67명, 일요일 49명)은 피해가 적었다.
성폭력 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공중 밀집 장소에서 추행하다 걸리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 카메라 등을 이용해 촬영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가 여성만 타는 '여성안전칸'을 만들려 했으나, 반대가 많아 무기연기했다. 대신 올 4월쯤 2호선과 7호선 객차 안에 CC TV를 달아 성추행범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예정이다.
◇오르내릴 때 주의·자세는 45도
경찰이나 지하철 운영기관에서는 성범죄 예방을 위해 ▲지하철역 계단이 가파르고 에스컬레이터가 긴 곳에서는 가방을 뒤로 메거나 손에 든 책을 뒤쪽으로 놓는다 ▲자세를 옆쪽으로 향한 채 선다 ▲가벼운 신체 접촉이라도 즉시 대응한다는 등 주의사항을 알리고 있다. 혼잡할 때는 맨 앞쪽이나 뒤쪽 칸을 이용하도록 권하는데, 대개 성추행범들은 범행이 들통나면 도망가기 편한 곳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친고(親告)죄로 신고가 없으면 처벌하기 어렵다. 망설이는 여성을 위해서는 '112 문자메시지'를 권하고 있다. 수신번호를 '112'로 해서 지하철 칸 번호와 이동방향을 보내면 접수가 된다.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 통과 역 등을 함께 붙이면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