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41)씨는 지난달 27일 막내딸 박모(5)양을 데리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빌라 앞에 여성용 손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봤다. 빌라 주민 이모(여·37)씨가 이삿짐을 나르느라 잠시 현관에 둔 가방이었다.

막내딸이 그 가방을 집어들고 품에 안은 채 엄마를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야단을 치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연말에 고깃국 한 번 해주지 못한 남편과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빌라가 시야에서 멀어졌을 때쯤 엄마는 딸에게 가방을 달라고 했다. 가방에는 현금 10만원과 신용카드가 든 지갑이 들어 있었다. 현금 10만원으로 식료품을 샀다.

가방이 사라진 것을 안 빌라 주민 이씨는 동작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여관에서 이씨를 검거해 입건했다. 이씨는 검거됐던 여관 단칸방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남편,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재학 중인 두 아들, 그리고 막내딸과 함께 장기 투숙하며 생활해왔다. 노동으로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 100만원으로는 다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딸이 호기심에 실수로 가방을 가지고 온 것"이라며 "그걸 알면서도 생활비가 부족해 돌려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이씨가 돈을 직접 훔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죄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정쩡하다"고 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빌라 주민 이씨는 "사정이 딱한 것 같으니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